기업 총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회사의 사업 기회를 유용한 사례로 첫 제재 대상에 오른 ‘SK 실트론 지분 인수’에 대해 법원은 공정위와 전혀 다른 판단을 내놨다. ‘기업의 합리성’이란 관점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 불법으로 보기 어렵거나, 불법임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지난달 24일 서울고등법원 행정6-2부(부장 위광하‧홍성욱‧황의동)가 ㈜SK 및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공정위의 시정명령·과징금 부과 처분을 모두 취소하라고 판시했다. 판결문에는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인 ‘SK는 왜 SK실트론(옛 LG실트론)의 지분을 70.6%만 취득하고 나머지 29.4%에 대해선 매입을 포기했는가’라는 질문에 재판부가 “불합리한 결정이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한 근거가 담겼다. 지분 취득 혹은 지분 취득 포기 등 기업 경영상의 결정은 자본주의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우선 바라봐야 한다는 함의가 담긴 판시였다.
공정위 "사업기회 제공", SK "리스크 회피"
앞서 공정위는 주식회사 SK가 2017년 LG실트론의 주식을 70.6%만 매입한 뒤 나머지(29.4%)를 최태원 SK 회장이 인수하도록 한 것이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봤다. SK가 나머지 지분 29.4%를 인수하는 ‘사업 기회’를 포기하는 과정에서 합리적 검토가 없었고, 그 결과 특수관계인인 최 회장이 해당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사업 기회를 확보하며 사익을 편취했다는 게 공정위의 결론이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2021년 12월 최 회장과 SK에 각각 8억원씩 총 16억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반면 SK는 SK실트론의 지분을 100% 완전 취득하지 않은 것은 이윤 추구 행위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최 회장을 위해 29.6%의 지분 매입을 포기한 게 아니라, 당시로선 지분 매입을 포기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었다는 취지다. SK는 2017년 취득한 지분 70.6%만으로도 SK실트론의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한 상태였다. 추가적인 지분 취득 없이도 단독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오히려 지분을 100% 취득하는 것은 투자금 회수와 투자 리스크 관리에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SK의 주장이었다. SK실트론의 지분을 인수하는 데 집중적인 재원을 투자할 경우 리스크 분산이 어려웠다는 건데, 재판부는 SK 내부에서도 PM(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재무 부문을 중심으로 LG실트론이 생산하는 웨이퍼의 가격 상승 시기와 성장 폭을 놓고 핑크빛 전망으로 일관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는 점을 고려해 이런 주장을 받아들였다.
"최태원 선정 과정에 개입 근거 없어"
재판부는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지분을 매입했고, 이 과정에 해외 기업 등 다른 경쟁자가 존재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지분 인수를 위한 적격투자자로 최종 선정된 건 최 회장이 제시한 입찰 가격이 가장 높아서였고, 자금 조달능력도 확실했다는 점을 고려했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최 전 회장이 적격투자자로 선정되는 데 있어 SK실트론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볼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최 회장을 제외한 다른 의향자들이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선 주주 간 협약 체결 등 SK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던 만큼, SK가 최 회장에게 사업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공정위 주장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다. “투자자의 권리 등을 보장하기 위해 협약이 필요했다는 사정만으로 공개경쟁입찰이 SK가 최 회장에게 사업기회를 제공한 것과 같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