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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억 어선 대출, 넉달 만에 다 갚았다"…금값 된 '검은 반도체'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물김 도매가 역대 최고액”

지난 7일 오전 전남 신안군 수협 송공위판장 앞 해역에서 김 가공업자들이 수확된 물김을 경매로 구매하고 있다. 황희규 기자

지난 7일 오전 전남 신안군 수협 송공위판장 앞 해역에서 김 가공업자들이 수확된 물김을 경매로 구매하고 있다. 황희규 기자

지난 7일 오전 11시 전남 신안군 압해읍 수협 송공위판장. 김 채취작업을 마친 어선들이 위판장 인근에 모여들자 수협 경매사들과 김 가공업자 20여명이 위판을 시작했다. 업자들은 배에 실린 물김 상태를 직접 손으로 확인한 후 원하는 가격을 메모지에 적어 경매사에게 건넸다.

“1번 배, 19만5000원. 2번 배, 22만5000원. 3번 배, 21만원.”어민들은 이날 경매사가 외치는 가격을 듣고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김 도매가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물김 1망(120㎏)을 22만5000원에 판 어민 김모(72)씨는 “평생 김 양식을 해왔지만, 이렇게 비쌌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최명용 송공어촌계장은 “지난해 1망에 10~12만원 수준이던 김 도매가가 올해 배가량 늘었다”며 “수확량이 많은 일부 어민은 지난해 11월께 어선 구매로 생긴 대출금 7~8억원을 넉 달 만에 모두 갚았다”고 말했다.

수요 늘고, 공급은 줄고

지난달 26일 전남 신안군 압해읍 앞바다 지주식 김양식장에서 추운날씨에도 어민들이 김채취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6일 전남 신안군 압해읍 앞바다 지주식 김양식장에서 추운날씨에도 어민들이 김채취를 하고 있다. [뉴스1]

올해 김 가격이 대폭 오른 것은 김 생산량은 소폭 줄었는데 수출량은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김 수출량은 약 1억 속(1속당 100장)으로 전년보다 17.8% 늘었다. 수출금액도 전년보다 20.7% 증가한 7억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수산업관측센터 관계자는 “수출 호조세가 지속하면서 평년보다 많은 양의 김이 수출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지난 7일 오전 전남 신안군 수협 송공위판장 앞 해역에서 수확된 물김이 위판을 기다리고 있다. 황희규 기자

지난 7일 오전 전남 신안군 수협 송공위판장 앞 해역에서 수확된 물김이 위판을 기다리고 있다. 황희규 기자

최근 미국에서 냉동김밥 열풍이 불면서 김에 ‘검은 반도체’, ‘K-Gim(김)’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과거 김을 '블랙페이퍼(Black paper)'라 부르며 금기시했던 것과는 정반대다. 특히 한국산 김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한국산 김은 세계 김 시장의 70.6%(2022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9년부터 수산식품 가운데 수출 품목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한국산 김은 맛이 좋은 데다 저칼로리 건강식품'이란 인식이 확산한 덕에 미국·일본·중국·동남아시아 등 120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2010년 64개국에서 2배 가까이 늘었다. 실제 한국산 김은 일반 김, 김부각, 김 튀김 등 다양한 간식으로 가공돼 판매 중이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기업·지자체도 팔걷고 나서   

기업들도 일제히 관련 제품을 내놓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미국과 유럽을 집중적으로 공략 중이다. 덕분에 지난해 상반기(1∼6월) CJ제일제당의 김 제품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30% 늘었다. ‘양반김’으로 유명한 동원F&B도 지난해 해외에서 약 45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맛뿐 아니라 한국산 김이 친환경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은 시장 전망을 밝게 하는 요소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과거 ‘지구를 위해 해조류를 조리하는 한국’이라는 기사를 통해 해조류 섭취가 이산화탄소 감소로 이어져 환경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실제 김과 미역, 다시마, 우뭇가사리 등의 이산화탄소 흡수능력은 열대우림의 2~3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 7일 오전 전남 신안군 수협 송공위판장 앞에서 수협 관계자가 어민이 수확한 물김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황희규 기자

지난 7일 오전 전남 신안군 수협 송공위판장 앞에서 수협 관계자가 어민이 수확한 물김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황희규 기자

지방자치단체마다 김 수출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우선 전남도는 김 수출을 늘리기 위해 신안과 해남을 ‘김 산업 진흥 구역’으로 선정했다. 또 김 가공업체 지원 등을 위해 올해 두 곳을 추가로 선정할 계획이다. 김 생산보다 가공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김 가공업체에 대한 지원과 김 산업 집적화 등을 통해 수출을 늘려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충남도와 서천군은 4억450만원을 들여 서면 월리김종합비즈니스센터 안에 김 거래소를 마련하고 최근 개소식을 가졌다. 해외 판로는 다양해졌지만, 정작 국제 시세 등에는 어두운 어민과 제조업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전남 목포 등에 국내 도·소매상을 위한 김 거래소가 있지만, 국외 바이어를 상대로 한 국제 김 거래소 운영은 서천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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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전남 신안군 압해읍 앞바다의 지주식 김양식장에서 어민들의 배에 올라오는 물김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6일 전남 신안군 압해읍 앞바다의 지주식 김양식장에서 어민들의 배에 올라오는 물김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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