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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건넨 "대학 어디가니?" 이말, 10대 우울 부를 수도 [슬기로운 건강생활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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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 해를 잘 보내기 위해 건강은 빠뜨릴 수 없는 요소입니다. 나이에 따라 신경 써야 할 건강 이슈들이 다릅니다. 설 명절을 맞아 선물도 좋지만 연령대별 챙겨야 할 건강 포인트를 체크해보는 건 어떨까요. 중앙일보가 서울대병원 전문가 도움을 받아 연령별 슬기로운 건강생활을 짚어봤습니다. 첫 번째는 김재원 소아정신과 교수와 알아보는 10대의 건강한 마음 챙기기입니다. 

“대학은 어디로 가니?”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니?”

설 명절을 앞둔 수험생들은 모처럼의 긴 연휴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친척 어른들이 대학이나 공부에 관해 물어보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수시나 정시 합격으로 대학 입시를 마치고 홀가분하게 명절을 맞이하는 수험생도 있지만, 정시 추가 합격을 기다리는 수험생은 연휴 기간을 전전긍긍하며 보내게 될 수 있다. ‘시험을 더 잘 볼 수 있었는데’,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할걸’과 같은 후회는 지나친 반추가 동반되면 자책과 우울로 이어지기도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둔 학생도 마찬가지이다. 학원도 최소한 하루 정도는 쉬는 명절 기간이니 오래간만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쉬고 싶은데, 주위 어른들의 관심(아닌 간섭)에 나만 오롯이 숨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자칫 없을 수 있겠다는 걱정과 불안이 앞서기도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성적은 오르지 않고, 다른 친구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번 연휴 기간을 반전의 기회로 삼아보자는 비장한 결심에 더 긴장할 수도 있다.

이럴 때 느낄 수 있는 우울이나 불안은 정상적인 감정이지만, 일정 수위를 넘어가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우울하거나 짜증 나는 기분을 하루의 대부분 거의 매일 경험하면서 평소 좋아하는 활동이나 취미에 전혀 흥미가 없어지고 의욕이 떨어진다면, 병원에 가봐야 하는 우울증일 수 있다. 식욕 저하, 불면, 피로 증상, 죄책감이나 무가치감, 정신운동 속도의 지연, 집중력 저하, 죽음이나 자살에 대한 반복적인 생각 등이 동반된다면,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어린이병원 기분과 불안 클리닉 '점진적 근육 이완' 예시

서울대어린이병원 기분과 불안 클리닉 '점진적 근육 이완' 예시

병적 불안의 세 가지 판단 기준

불안이 정상적인 수준을 넘는 것인지 아닌지가 헷갈린다면 다음의 세 가지 기준으로 판단해보면 된다. 첫째, 병적인 불안은 안전한 상황조차도 위험하다고 해석하게 한다. 위험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설 명절 때 친척들이 내 입시 결과에 실망하여 나를 비난하는 장면을 상상한다면, 이는 걱정과 불안이 지나친 것이다. 둘째, 병적인 불안은 조절하기 어렵다. 누구나 불안해지면 안절부절못하거나 근육이 긴장하며 심박 수가 빨라진다. 대부분 이러한 신체 증상은 간단한 심호흡이나 근육이완요법 등의 노력으로 금방 가라앉는다. 병적인 불안과 관련된 신체 증상의 대표적인 예가 공황 증상이다. 셋째, 병적인 불안은 건강한 일상생활을 방해한다. 친척 어른들의 비난과 무시, 또래 친척들과의 다툼과 갈등 등과 같이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불안해하며,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거나 아예 친척 집에 가는 것을 거부한다면 이는 불안이 병적인 수준일 수 있다.

극복 전략은

우울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비합리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기분이 좋아지는 활동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울이 더 심해질 수 있다. 기분이 좋아지는 활동을 계획해 실천하는 행동 활성화(behavior activation)는 우울을 빠르게 극복할 수 있는 기법의 하나다. 생각과 감정, 행동은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미치는데 이 중 행동을 바꾸는 것이 가장 손쉽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대표적인 활동은 운동이다. 운동을 일과에 규칙적으로 포함하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의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 운동의 항우울 효과는 연구로도 많이 입증되어 있다. 설 연휴에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하고 이를 한 해의 루틴으로 만들어나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명절을 슬기롭게 보낸 것이다.

서울대어린이병원 기분과 불안 클리닉 '나 전달법' 사례 예시. 자료 서울대병원

서울대어린이병원 기분과 불안 클리닉 '나 전달법' 사례 예시. 자료 서울대병원

우울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인 생각은 대부분 반추와 관련이 있다. 반추 교정법을 알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우울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먼저 반추나 걱정과 같은 생각 자체보다는 생각에 대한 반응이 정서적 고통을 유발함을 알아야 한다. 반추는 생각일 뿐이고 실제가 아닌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추에 맞서지 말고 반추가 있다는 것만 인지하는 수준에서 멈추도록 해 본다.

‘지금까지 공부를 안 했으니 내 인생은 망했어’라고 반추했다면 ‘내 마음이 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구나’ 정도의 인지에서 그치도록 연습해보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반추를 시각화해본다. 이 과정에서 반추가 가져오는 정서적 반응에서 분리되어 자책이나 우울로 빠질 수 있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내 인생은 망했다’라는 글자 하나하나를 머릿속에서 입체화시켜보는 것이다. 눈을 감은 채로 시냇물을 시각화하면서 ‘내 인생이 망했다’라는 생각을 나뭇잎이라 여기고 나뭇잎이 시냇물에 떨어진 후 떠내려가는 장면을 시연해보는 것도 치료자들이 많이 쓰는 방법이다.

불안의 조절에는 호흡 조절(controlled breathing), 점진적 근육 이완(progressive muscle relaxation), 명상, 마음 챙김 기법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유튜브 동영상이나 스마트폰 앱을 찾아 따라 하면 된다. 특히, 점진적 근육 이완은 몸의 여러 부위의 근육 집단을 연속적으로 긴장시키고 이완시킴으로써 불안과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다고 여러 연구에서 입증된 바 있다.

우울과 불안을 극복하면서 의사소통을 명확히 하려고 노력한다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고 긍정적인 기분을 잘 유지할 수 있다.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좋은 방법으로 ‘나 전달법(I-message)’이 있다. 이는 타인의 행동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가 아닌 관찰한 내용을 묘사하고, 관찰한 행동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며, 그 영향으로 생긴 나의 기분을 표현하고, 마지막으로 타인의 해주기를 바라는 사항을 부탁하는 순서로 소통을 진행하는 것이다.

설 연휴 중의 일정에 대해 부모가 꼬치꼬치 캐물으면 매사에 감시받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반항하고 싶어지고 오히려 말을 하지 않거나 거짓말을 하게 되기 일쑤다. 이때 내가 관찰한 부모의 행동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묘사하면서, 그 행동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과 내 기분이 어떻게 변했는지 표현하고, 내 일정에 대해 내가 먼저 말하도록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소통을 맺으면 부모-자녀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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