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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조 철도 지하화, 10조 간병비…'돈 지르기'는 똑닮은 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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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야가 철도부터 저출생 대책까지 경쟁적으로 총선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1~5호 총선공약을 각각 발표했다. 저출생·SOC(사회간접자본)·어르신 사업 등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비슷한 주제다. 확실한 공통점은 공약 실행을 위해서는 수조원에서 수십조의 재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생략됐다.

①철도 지하화

국민의힘은 경기도 수원역~성균관대역, 서울 영등포역~용산역, 대전역 인근 철도 지하화 공약을 먼저 내놨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에서 “육교와 철도 부분 덮이고 공원, 산책로, 맨해튼 스카이라인 같은 것이 생긴다 생각해보자. 대단한 사업”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곧장 서울 광역급행철도(GTX), 서울 지하철 2·3·4·7·8호선을 포함한 부산·대구·광주 등 전국 도심 구간 철도의 지하화 계획을 발표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원장이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 장안구 천천동을 찾아 총선 4호 공약 ‘구도심 함께 성장’을 발표했다. 전민규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원장이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 장안구 천천동을 찾아 총선 4호 공약 ‘구도심 함께 성장’을 발표했다. 전민규 기자

민주당은 철도 지하화 공약을 실현하는 데 80조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의 철도 지하화 공약 실현에도 수십조원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여야 모두 “정부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상 철도 부지를 개발하는 데 수익이 나기 때문에 민간 투자를 유치하고, 지하화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사업성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결국 세금으로 보조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용산역 등 서울에서도 번화한 곳이 아니고서는 지상 개발로 지하화에 들어가는 비용만큼의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며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 투자 유치의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축소 사회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지역의 지하화가 필요한 것인지, 다른 SOC 사업 등과 비교해 시급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②저출생 대책

여야 모두 저출생 대책에 열을 올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31일 “보편적 출생지원 원칙에 기초해 분할목돈지원 방식을 포함하는 출생기본소득을 제안한다”며 기본소득 논의를 부활시켰다. 현행 아동수당을 기본소득 개념으로 전환하고, 이를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0년 만기 1억원을 대출해주고, 출생 자녀 수에 따라 원리금을 감면해주겠다는 것도 민주당 총선 공약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저출생 종합대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저출생 종합대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도 만만찮다. 1~2차에 걸쳐 저출생 대책을 내놨는데 초·중·고 학생에게 연간 100만원의 바우처 지급, 정부 지원 아이돌봄 서비스의 민간 확대 등을 공약했다. 늘봄학교를 단계적으로 무료 전환하고, 육아휴직 급여를 인상하는 공약 등 대부분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내용이다. 여야 모두 저출생 문제 해결이라는 당위성만 내세웠을 뿐 재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총선용 포퓰리즘’ 지적이 나온다.

③고령층 지원

국민의힘은 6일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에 주 7일 점심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앞서 야당에서 주 5일 경로당 점심 제공을 공약으로 내걸자 이틀을 더 늘리는 식으로 맞불을 놨다. 간병비 급여화 공약도 냈다. 지난해 민주당이 낸 공약과 흡사한 내용이다.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 땐 연간 10조원 이상 소요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2년 뒤면 적자 전망이 나오는 건보 재정은 공약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여당이 내면 야당이, 야당이 발표하면 여당이 비슷한 공약을 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더 주겠다”는 식의 경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선거를 앞두고 민생을 챙기고,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공약을 내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재정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실현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약 자체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재원 조달 방안을 함께 밝혀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이미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의무지출 비중이 50%가 넘는데 출생아 수 감소로 앞으로 세수와 재정 여건은 악화할 것"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복지를 늘리겠다는 데 집중된 공약이 현실화하면 투표권이 없는 미래세대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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