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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타이완 파인애플 과자 펑리수(鳳梨酥) 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파인애플 잼이 들어간 대만의 대표 과자 펑리수. 바이두(百度)

파인애플 잼이 들어간 대만의 대표 과자 펑리수. 바이두(百度)

타이완을 여행할 때 많이 사는 인기 상품 중 하나가 펑리수(鳳梨酥)라는 과자(빵)다. 원칙적으로는 파인애플 잼으로 만드는데 타이완은 파인애플 원산지도 아니고 최대 생산국도 아니며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타이완의 대표 관광 상품이 됐다.

펑리수라는 과자, 알고 보면 꽤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파인애플을 통해 타이완과 중국의 역사, 풍속 그리고 옛날 파인애플을 바라봤던 동서양의 시선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펑리수의 이름풀이다. 펑리(鳳梨)는 파인애플, 수(酥)는 연유가 들어간 빵 혹은 얇은 껍질을 켜켜이 쌓아 구운 서양의 페이스트리 비슷한 중국 전통 과자(빵)다.

한자로 봉황 봉(鳳), 배 리(梨)자를 쓰는 펑리는 봉황의 배, 즉 전설에 나오는 봉황새가 먹는 배라는 뜻이니 옛날 사람들이 파인애플을 얼마나 대단하게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타이완에서는 펑리를 왕리(王梨)라고도 한다. 배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배라는 의미가 되겠는데 현지 발음으로는 융성할 왕(旺), 올 래(來)자를 쓰는 왕래와 발음이 같다고 한다. 그렇기에 파인애플 또는 펑리수를 먹으면 하는 일이 융성하게 번창할 수 있다고 풀이한다. 중국식 말장난(諧音)이고 마케팅이겠지만 어쨌든 파인애플에 어마어마한 의미를 부여했다.

타이완에는 파인애플과 관련해 재미있는 풍속이 또 있다. 결혼식 피로연이나 축제 등의 파티 테이블 가운데에 파인애플을 올려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 표면적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파인애플에 길상의 의미가 있고, 또 옛날에는 워낙 귀한 과일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닌 듯싶다. 또 다른 역사적 배경이 있다.

한 해 타이완에서 생산되는 파인애플은 약 42만 톤이다. 바이두(百度)

한 해 타이완에서 생산되는 파인애플은 약 42만 톤이다. 바이두(百度)

파인애플은 중남미 카리브해가 원산지다. 한때 하와이가 재배지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최대 생산국이 카리브해의 코스타리카, 인도네시아, 필리핀 순이다. 타이완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파인애플을 본격 재배한 곳이다. 파인애플 과자 펑리수가 타이완의 인기 관광상품이 된 것에는 이런 연결고리가 있다.

어쨌든 파인애플이 신대륙에서 구대륙 유럽에 처음 전해진 것은 콜럼버스가 두번째 아메리카 대륙 항해를 마치고 귀국한 1483년 11월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처음보는 신비한 과일이었던데다 대서양을 건너는 긴 항해 동안 농익을 대로 농익었다. 그렇기에 파인애플을 처음 맛본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이 그 향기와 달콤함에 감탄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유럽 상류사회에서는 이렇게 파인애플에 열광하면서 수요가 폭발했지만 파나마 운하가 뚫리기 전, 남미 대륙 남단을 돌아오는 항해 길은 너무 멀어 운송이 어려웠고 열대 과일이었기에 유럽에서는 재배할 수도 없었다. 당연히 부르는 게 값이 됐다.

그래서 거의 1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유럽인에게 파인애플은 그림의 떡이었지만 17세기 초, 스페인에 이어 해상무역을 장악해 부를 축적한 네덜란드에서 드디어 파인애플 온실재배에 성공했다. 하지만 400년 전이었던 만큼 열대과일의 온실재배에는 비용이 엄청나게 들었고 파인애플은 여전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다. 한 개 값이 현재 가격으로 보통 수백 만원을 넘었고 심지어 비싼 것은 1만 달러, 대략 1,400만원에 거래됐다고 한다.

그런 만큼 파인애플 내지 파인애플 묘목은 최고의 고부가가치 상품이었고 파인애플 무역 역시 해양 강국이었던 네덜란드가 독점했다. 이런 네덜란드가 온실재배를 대신할 최적의 재배지를 찾다가 발견한 곳이 바로 타이완이었다.

17세기 타이완을 방문한 유럽인들이 남긴 기록을 모은 책(初探福爾摩沙:荷蘭筆記)에는 1648년 타이완 중부의 대두왕국(大肚王國)에 파인애플이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타이완은 중국이 진출하기 전으로 상당한 지역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지배 아래 있었으니 타이완에 처음 파인애플을 전한 나라 역시 네덜란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결혼식과 파티를 파인애플로 장식한다는 타이완의 풍속도 유럽의 전통과 관련 있다. 옛날 유럽에서 파인애플은 비싼 가격과 희소성으로 인해 권력과 재력의 상징, 환대의 아이콘으로 쓰였다.

지금도 유럽이나 미국, 동남아 휴양지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파티 테이블 중앙에 조각한 파인애플이 놓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테이블 장식용인 동시에 파티가 끝날 무렵이면 조각한 파인애플을 가져다 디저트로 내놓기도 하는데 손님을 환영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유래는 16~17세기 유럽 귀족의 디너파티에 장식용으로 파인애플을 놓았던 것에서 비롯된 전통이다.

파인애플과 타이완의 대표 과자 펑리수, 그리고 타이완 풍속에는 이런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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