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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난 전공의 파업전야…병원장 “우린 못 말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의료계가 파격적인 의과대학 증원 결정에 반발해 단체행동을 예고한 가운데, 정부는 7일 주요 병원장들을 만나 자제를 촉구했다. 또 전국 17개 시·도 보건국장과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설 연휴 직후 전공의 등이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오전 조규홍 복지부 장관 주재로 전국 221개 수련병원 병원장들과 비대면 간담회를 진행했다. 수련병원은 전공의를 교육하는 의료기관인데, 복지부가 지정한다. 복지부는 간담회 직후 “수련병원에 전공의 파업 대응을 위해 전공의 감독, 상황 모니터링 등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시·도 보건국장회의에서는 의사 집단행동 동향, 설 명절 연휴 응급실 운영 등 비상진료대책을 논의했다.

전국 전공의는 1만5000명가량이다. 이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면 대형병원은 진료에 차질을 빚는다. 2020년 의료계 총파업 당시 전공의 파업(집단 휴진) 참여율이 80%에 달했고, 정부는 의대 증원 추진 계획을 접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의대 증원) 2000명은 해도 너무 지나친 숫자”라며 “모든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적었다.

대전협이 전공의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88.2%가 의대 증원에 따른 단체행동 참여 의사를 나타냈다. 대전협은 오는 12일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서울 ‘빅5’ 등은 대전협 요청으로 총파업 찬반 투표에 나섰다.

정부와 전공의의 ‘강대강’ 대치 중간에 낀 대학병원들은 곤혹스럽다. 정부는 병원 경영진에게 사실상의 전공의 단속을 요청했다. 이날 열린 수련병원장 간담회에서 복지부는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응”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병원장은 “전공의 파업을 막을 수 없다고 복지부에 설명했지만, 정부는 ‘문제 발생 땐 원장이 책임져라’라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3~4년 차 전공의조차 교수 만류에도 ‘하루빨리 나가서 돈 버는 게 이득’이라며 사직을 결심하는 상황”이라며 “교수나 병원장이 달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다른 대학병원 고위 관계자도 “우리가 나가라는 게 아니라 전공의들이 나가겠다는데 어떻게 막냐”며 “교수들의 이탈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총파업 준비 태세를 갖췄다. 의협은 이날 오후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어 의대 증원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의결했다. 비대위 설치는 전날 이필수 회장이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퇴 뜻을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의협 관계자는 “비대위에 모든 투쟁 수단에 관한 결정권을 위임했다”며 “설 연휴 뒤 투쟁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목소리를 내지 않던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대한의학회도 입장문 등을 통해 “유연하지 않은 대규모 증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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