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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홍의 시선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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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오는 11월 5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최근 미국 유권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1%가 바이든이 ‘재선 자격이 없다’고 답변했다. 바이든이 ‘다시 뽑힐 만하다’는 응답은 38%에 불과했다.

CNN과 여론조사기관 SSRS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금 맞붙을 경우 트럼프가 49%를 얻어 바이든(45%)을 4%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의 우세는 미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경합주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블룸버그통신·모닝컨설트가 최근 애리조나·조지아·미시간 등 7개 주요 경합주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트럼프는 48%의 지지율로 바이든(42%)을 6%포인트 앞섰다.

트럼프 인기는 성과 있었기 때문
반이민·경제·대외정책 호응 높아
트럼프 진영 접촉해 이해 높여야

미 대선이 아직 9개월 남아 그사이 지지율은 요동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바이든과의 양자 대결에서 꾸준히 앞서고 있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열광적 지지가 뒷받침되고 있어 각종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그의 당선 확률은 어느 때보다 높다. 한국 등 자유주의 국가들은 트럼프의 당선을 우려한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동맹을 경시하고, 관세 인상 등 보호무역 정책으로 국제 무역을 움츠러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미국인들의 트럼프 지지를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각종 성 추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노골적 무시, 자기 과시 등으로 인해 트럼프는 정치인으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트럼프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을 역임했고 다시 유력 대선후보가 된 데는 분명한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이룬 성과를 고려하지 않고 그를 극우 성향의 인기 영합 정치인으로만 매도하는 건 현실을 호도할 수 있다. 이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경우 한·미 불협화음으로 번질 수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 등에 따르면 트럼프의 일부 정책들은 효과가 있었다. 첫째가 그의 불법 이민 차단 정책이다. 트럼프는 대통령 시절 이민자들에게 망명 신청 기회를 주지 않고 신속하게 추방했다. 반면 바이든 정부의 관대한 이민 정책은 이민자들을 급격히 늘려 미국 유권자들의 반이민 정서를 확산시켰다. 블룸버그통신 등이 최근 7개 경합주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민 문제와 관련해 누구를 더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트럼프라고 답한 사람이 52%에 달해 바이든(30%)을 압도했다.

둘째가 미국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트럼프는 저임금 백인 노동자들이 워싱턴 엘리트층에 의해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됐다며 이들의 대변자를 자처했다. 진보에 편향된 미디어·학계는 트럼프의 진단을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라며 무시했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 성장 부진과 노동시장 참여율 저조로 상당수 저임금 백인 노동자들이 암울한 미래로 인한 자살·마약중독 등 ‘절망의 죽음(death of despair)’으로 내몰리는 게 현실이다.

셋째가 경제 성적이다.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면 트럼프 임기 동안 미국 경제는 좋았다. 근로자 임금은 물가상승률을 웃돌았고, 실업률은 50년 내 최저 수준이었으며, 주식시장은 활황이었다. 블룸버그통신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36%는 투표할 때 경제 문제를 가장 고려한다고 했는데, 응답자의 51%가 ‘트럼프를 더 신뢰한다’고 말해 ‘바이든을 더 신뢰한다’(35%)를 앞질렀다.

넷째가 대외 정책이다. 트럼프 재직 시절 세계는 큰 분쟁을 겪지 않았다. 트럼프가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 그의 예측하기 힘들고 위협적인 말들이 먹혔을 수도 있다. 반면 바이든 정부 들어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후티 반군의 홍해 항로 공격,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북한의 핵 공격 위협 등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은 한국에 큰 도전이다. 트럼프가 북핵 위협을 억제할 한·미 동맹의 확장억지 전략을 얼마나 존중할지 의문이고,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주한미군 감축,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또 트럼프가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 부과를 강행할 경우 무역 국가 한국은 작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트럼프의 당선 확률이 높아지며 한국 정부는 트럼프 진영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 있다. 트럼프의 정책이 많은 미국인에게 먹혀드는 현실을 직시하고, 트럼프와 그 진영 인사들과 사전에 접촉해 한국에 우호적 시각을 가지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