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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엔터테인먼트?…인생 알려면 책을 펼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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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달 26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된 대면 인터뷰에서 욘 포세는 “문학을 통해서만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이 있다”고 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6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된 대면 인터뷰에서 욘 포세는 “문학을 통해서만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이 있다”고 했다. [AP=연합뉴스]

사회 문제를 짚어내는 이야기와 개인의 내면을 탐구하는 이야기로 문학을 양분한다면,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65)의 작품은 후자에 속한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가 욘 포세는 고독과 허무, 삶과 죽음, 죄의식과 욕망 등 보편적인 주제를 끈질기게 다뤄왔다. 1983년 첫 장편 소설 『레드, 블랙』을 냈고, 이후 40년간 현대 희곡과 소설, 시, 아동 문학 등 문학 전 장르에서 90편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

색깔에 비유하자면 포세의 문학은 회색이다. 그의 작품은 평범한 인물의 내면을 잔잔한 속도로 들여다본다. 욘 포세 뿐만 아니라 로이 야콥센,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카린 스미르노프 등 세계적 명성을 얻은 북유럽 작가들의 작품은 반나절 또는 하루의 이야기가 책 전체를 채우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공을 들인다. 지난해 10월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포세의 이름을 호명하며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한 작가”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의 작품은 아름다운 운율이 특징이다. 노르웨이 서남부 방언인 뉘노르스카(nynorska)로 쓰인 그의 작품을 한국어로 옮긴 번역가들은 입을 모아 “장편 소설도 시처럼 읽힌다”고 말했다. “원문을 소리 내서 읽어보면 단순하고 본능적인,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리듬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오슬로의 한 서점에 노벨상 수상자라는 표시와 함께 포세의 작품이 진열돼 있다. 홍지유 기자

오슬로의 한 서점에 노벨상 수상자라는 표시와 함께 포세의 작품이 진열돼 있다. 홍지유 기자

지난달 26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내의 한 카페에서 욘 포세를 만났다. 포세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0월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당시 어디에 있었나.
“베르겐의 집 근처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 46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 (46은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의 국가 번호다) 그때 수상을 직감했다.”
수상을 기대했나.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라는 얘기가 나온 건 10년도 지난 일이다. 10년 동안 못 받았으니, (노벨상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전화를 받은 후 반응은.
“‘(수상을) 믿을 수 없다’고 하자 매츠 말름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이 ‘20분 뒤 정식 발표가 날 테니 직접 확인하라’고 말했다. 집으로 급히 돌아와서 TV를 켰을 때 마침 내 이름이 불렸다.”
노벨상 수상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바티칸 대사관을 통해 교황의 축하 편지를 받았다. 가톨릭 신자인 내게 매우 뜻 깊은 일이다.”
비슷한 문장을 반복하는 실험적인 스타일로 유명하다.
“어릴 적 뮤지션을 꿈꿨고 작곡을 하며 가사를 썼다. 가사를 쓰다가 시를 쓰게 되고, 시를 쓰다가 소설도 쓰게 됐다. 그러니까 내 글의 뿌리는 음악이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멜로디와 가사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리듬이다. 글도 그렇게 써야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설’이라는 평도 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다룬 소설이다. 인생에서 탄생과 죽음만큼 극적인 사건이 또 있을까?”
‘미니멀리즘의 작가’라는 표현에 동의하나.
“식탁, 연필, 찻잔 같은 단어는 달리 해석될 여지도 없고 번역도 쉽다. 이런 손에 잡히는 표현을 좋아하기 때문에 관념어는 쓰지 않으려고 한다. 쉬운 문장으로도 철학적인 주제를 다룰 수 있다. 진실은 단순함에 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했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이 인상적이다.
“그게 문학의 역할이다. 문학을 통해야만 표현이 가능한 영역이 있다. 특히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은 문학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장편 소설에도 함축적인 표현이 많아 시나 희곡처럼 읽히기도 한다.
“침묵도 언어다. 여백이 있어야 상상할 수 있다. 어쩌면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침묵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작의 비결은.
“글 쓰는 속도가 빠른 편이다. 시는 앉은 자리에서 끝낸다. 글쓰기는 내 무의식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캐릭터들은 이미 어떤 세계에 속해 살고 있고 나는 그쪽으로 귀를 기울일 뿐이다. 어떤 면에서 내 글쓰기는 이야기를 만드는 행위(act of making)가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행위(act of listening)에 가깝다.”
재미있는 것이 넘쳐나는 시대다. 왜 문학을 읽어야 하나.
“문학은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다. 인생을 탐구하기 위해 읽는 것이 문학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탐구하는 데는 문학만큼 탁월한 것이 없다. 좋은 문학에는 진리와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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