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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이재명∙이준석 모두 '철도 전쟁'…재원엔 딱히 답 없다

중앙일보

입력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연합뉴스·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연합뉴스·뉴스1

여야가 경쟁적으로 철도 관련 공약을 내면서 철도가 4·10 총선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역 인근을 찾아 철도 지하화 공약을 발표했다. 경부선 등 지상철을 지하화한 뒤, 지상에 주거·업무·상업 공간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25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요 노선 지하화 계획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은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A·B·C 연장 및 D·E·F 신설 계획도 공약했다.

그러자 다음날인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을 찾아 전국 12개 노선 지하화 및 수도권·대구·대전·부산·광주 도시철도 및 GTX 지하화 공약을 공개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지난 4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저비용(LCC) 고속철 도입안’을 약속했다. 저가항공사를 통해 비행기 요금을 낮췄듯이 민간 기업 참여 등을 통해 서울~부산 3만원대 운임료도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여야 모두 이런 철도 관련 공약 홍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전국 각지에 “우리 동네에 GTX-D가 지나간다”(국민의힘), “전국 도심 철도지하화!”(민주당)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경쟁적으로 붙고 있다. 이렇듯 철도 공약을 쏟아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동산 폭등의 역설

한국 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8억1875만원으로 지난 총선 때인 2020년 4월의 6억8816만원보다 19% 상승했다. 이러한 집값 폭등은 지난 4년간 서울 인구가 대거 경기도로 빠져나간 핵심 원인이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2023년 서울→경기 이주자는 129만7089명이었다. 지난해 12월 기준 경기도 인구 1363만821명의 9.5%에 달한다. 송석준 국민의힘 경기도당위원장은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유권자가 많아졌고 이들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며 “GTX 연장·신설안 등 서울~경기 출퇴근족을 잡기 위한 공약이 속출하는 이유”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시 천천동 보도육교에서 지역 주민과 동행하며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시 천천동 보도육교에서 지역 주민과 동행하며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철도 지하화 공약 역시 문재인 정부 당시 부동산 폭등 부작용의 연장선이란 시선이 많다. 폭등 뒤 하락세가 이어지며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자 개발 이슈를 통해 경기를 부양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철도 지하화는 서울 구도심과 경기 주민에게 이목을 끌만한 사안인데다, 침체된 경기를 띄우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재원은 어떻게?

문제는 사업비를 어떻게 조달할 지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5일 철도 지하화, GTX 연장·신설안에 총 134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은 민간투자(75조2000억원·56%)다. 국민의힘은 국토부 계획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도 재원 마련과 관련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한동훈 위원장은 지난 2일 “철도 지하화를 하면 사업 기회가 많이 생긴다. 대부분 민자로 해결할 수 있다”며 민자 유치를 강조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민주당 역시 철도 지하화(총 연장 259㎞) 예상 사업비 약 80조원 대부분을 민간투자를 통해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이개호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일 “사업비 대부분은 민자 유치로 해결할 것”이라며 “별도의 예산 투자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여야는 민자 유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같은 방식이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광석 전 한국교통대 교수는 “선로가 가장 넓은 경부선은 3복선(3중 선로가 이중)인데, 너비가 30~35m여서 아파트 한 채 지을 공간밖에 되지 않는다”며 “상업 공간을 지어도 사업성이 뚜렷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업성이 떨어지는데 민간기업이 쉽게 들어오겠느냐”고 반문했다.

설익은 공약 남발

과열 양상은 설익은 공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지하화 대상에 GTX를 포함했는데, 현재 GTX A·B·C는 서울 도심을 가로질러야 하는 특성상 도시철도(지하 20m 이상)와의 중첩을 피하기 위해 지하 40m 이상 대심도에 이미 건설 중이다. 아직 GTX D·E·F 설계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 역시도 대심도에 건설될 가능성이 크다. 또 개혁신당의 ‘저비용 고속철’ 공약도 “선로가 한정된 철도 특성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을 방문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수도권 지상철도 지하화'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을 방문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수도권 지상철도 지하화'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뉴스1

이현출(정치외교학과) 건국대 교수는 “단기적으론 쓰지만, 장기적으로는 약이 되는 공약이 나와야 하는데 현재 각 정당은 반대로 하고 있다”며 “진정성이 있다면, 각 정당이 총선 후 머리를 맞대고 공약을 다듬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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