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무인점포 잇단 절도에 "순찰 돌아달라"…경찰 "우리가 경비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서울 강북의 한 지구대에 근무하는 A 경찰관은 지난달 “초등학생 아이들 서너명이 아이스크림 무인점포 매장에 몇 시간 째 안 나가고 냉동고 위에 앉아있다. 내쫓아달라”는 112신고를 전달받아 현장에 출동했다. A 경찰관은 “현장에 갔더니 신고자는 없고, 아이들만 있더라. 타일러서 돌려보냈지만, 경찰이 사설 경비원도 아닌데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 허탈했다”고 말했다.

4일 서울의 한 무인점포에 붙어 있는 경찰 순찰 안내문. 이보람 기자

4일 서울의 한 무인점포에 붙어 있는 경찰 순찰 안내문. 이보람 기자

최근 전국적으로 무인점포가 많아지면서 경찰이 속을 끓는 상황이 빈발하고 있다. 서울 한 지구대 경찰관은 “1000~2000원 짜리 소액절도 사건 신고가 늘고 심지어 2시간마다 가게를 순찰해달라고 요구하는 업주까지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한 무인가게 앞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심야시간(00:00~06:00)에 수시로 경찰 순찰 중”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기도 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편의점 4사 무인점포는 지난해 말 기준 3310개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55.8% 급증한 수치다. 이밖에 아이스크림·빨래방 등 다른 무인점포들도 지난해 3월 기준 6323곳으로 조사(소방청 ‘2023년 다중이용업소 화재위험평가’ 자료)됐다.

그 결과 무인점포 특성을 악용한 ‘절도’ 사건이 급증했다. 형사정책연구원의 ‘무인점포의 범죄피해 실태 및 형사정책적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9월부터 22년 1월까지 서울의 무인점포에서만 1377건의 절도 범죄가 발생했다. 전국 무인점포 범죄 1640건 중 83.9%다. 경찰청 집계로는 2022년 한 해 동안 전국의 무인점포 절도 신고 건수는 6018건으로, 무인점포 범죄 집계를 시작한 2021년 3월~12월 절도 건수(3514건) 대비 71.25% 늘었다.

그나마 대기업 계열 편의점은 자체 대응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소규모 무인점포는 사각지대다. CU와 세븐일레븐, 이마트24는 안면 인식, 선반 무게 센서 등 시설을 갖춰 입장 때 본인인증만 하면 자동으로 물건이 결제되는 시스템을 시범 운영 중이다. CU와 GS25는 각각 보안업체와 손잡고 24시간 모니터링과 현장 경비 출동 등 자구책도 마련했다.

하지만 대다수 영세 무인점포의 경비 대책은 기본적인 폐쇄회로(CC)TV 설치 외엔 전무한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사소한 분쟁부터 절도 범죄까지 경찰 신고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경찰청 소속 네티즌들이 무인점포 운영에 대해 지적하는 댓글. 블라인드 캡처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경찰청 소속 네티즌들이 무인점포 운영에 대해 지적하는 댓글. 블라인드 캡처

이에 경찰에선 점주가 부담해야 할 매장 경비·관리 책임을 경찰 치안 서비스에 전가하는 것이란 불만이 터져 나온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한 경찰관은 “초·중학교 인근 무인점포가 절도 비율이 높은데, 점주들의 공통 의견은 ‘순찰차를 매장 앞에 세우고 거점근무를 해달라’ ‘경찰에서 포스터, 경고문 만들어달라’ ‘절도가 몇 건씩 일어나는데 경찰은 뭐하느냐’라는 것”이라며 “출입문에 신분증 인식 출입기를 설치해보라고 제안하면 ‘손님 떨어져서 싫다’고 하더라”고 적었다. 또 다른 경찰도 “자신들(무인점포 업주)은 아무 것도 안하고 폐쇄회로(CC)TV만 돌려본 뒤 신고하면 그만”이라며 “가장 큰 문제는 1000원 짜리 절도 신고 때문에 정작 긴급하고 중요한 112신고가 후순위로 밀려 도움을 못 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순 없지만, 시민 안전과 재산권 침해를 지키는 것 또한 경찰의 책임인 만큼 민관협의회를 설치해 합동치안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