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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릎으로 4강 해냈다…포기를 모르는 '캡틴 손' [아시안컵 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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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핑계를 대지 않는다. 상대 선수에게 차여 무릎이 까져도 그는 내색하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단 한 가지,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이다. 항상 잊지 않는 건 적으로 맞서 싸운 상대 선수에 대한 배려다. [뉴시스]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핑계를 대지 않는다. 상대 선수에게 차여 무릎이 까져도 그는 내색하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단 한 가지,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이다. 항상 잊지 않는 건 적으로 맞서 싸운 상대 선수에 대한 배려다. [뉴시스]

“나라를 위해 뛰는데 힘들다는 건 핑계일 뿐입니다.”

한국 축구대표팀 ‘캡틴’ 손흥민(토트넘)은 지난 3일 카타르 알와크라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호주에 2-1로 역전승을 거둔 뒤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지난달 31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6강전에서도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겼다. 두 경기 연속 ‘120분 혈투’를 치르느라 체력이 바닥났지만 그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16강전 승리 뒤 사우디 선수들 안으며 위로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왼쪽)의 그림 같은 프리킥. 3일 호주와의 8강전 연장 전반 14분, 약 18m 거리에서 오른발 감아차기 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렸다. 한국은 손흥민의 천금 같은 골에 힘입어 호주를 2-1로 물리쳤다. [연합뉴스]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왼쪽)의 그림 같은 프리킥. 3일 호주와의 8강전 연장 전반 14분, 약 18m 거리에서 오른발 감아차기 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렸다. 한국은 손흥민의 천금 같은 골에 힘입어 호주를 2-1로 물리쳤다. [연합뉴스]

손흥민은 “축구선수를 하면서 연장전을 두 경기 연속 뛴 적은 처음”이라면서도 “정신력으로 이겨내는 게 대회의 묘미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우승,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기자회견 말미에 자청해서 한마디를 더 했다. 그는 “늘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데, 오늘만큼은 함께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벤치에서 있던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시안컵에 출전 중인 손흥민이 월드클래스 ‘실력’과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손흥민은 지난달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아시안컵을 내 조국과 나 자신을 위한 특별한 대회로 만들겠다”며 64년 만의 우승을 다짐했다. 그러나 대회 초반 한국은 부진했다. 특히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요르단(2-2무) 및 말레이시아(3-3무)와 잇따라 비기며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해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러자 손흥민은 “축구선수이기 전에 인간이다. 선수들을 흔들지 말고 보호해 달라”며 동료들을 감쌌다.

16강전에서 수만 명의 사우디아라비아 팬이 경기장에 몰려들자 손흥민은 “실수해도 동료들이 있다. 그것만 믿고 나가서 상대를 조용하게 해주자. 쟤네(사우디) 팬들 4만 명, 5만 명? 오라 그래”라고 외치면서 후배들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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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사우디는 이날 연장전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그런데 주심은 사우디 팬이 자리 잡은 골대에서 승부차기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주장 손흥민은 “규정대로 동전 던지기로 골대를 정하자”고 따졌다. 전쟁처럼 치열한 경기 도중에도 캡틴의 냉철한 판단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주심은 손흥민의 주장에 수긍했고, 동전을 던진 결과 한국 팬들의 응원 소리가 들리는 쪽 골대에서 승부차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을 번복했다.

9년 전 호주전 패배 설욕 뒤 “덕분에 성장”

4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회복훈련 중인 손흥민. [뉴스1]

4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알 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회복훈련 중인 손흥민. [뉴스1]

승부차기 끝에 한국은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 손흥민은 기뻐하는 동료 선수들을 지나쳐 수비수 알리 알 불라이히를 비롯한 사우디 선수들을 찾아갔다. 그러고는 그들을 일일이 안아주면서 위로했다. 알 불라이히는 경기 도중 손흥민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등 거친 플레이로 일관했던 선수다. 팬들은 “그릇이 큰 ‘캡틴 손’. 이것이 승자의 여유”라며 박수를 보냈다.

호주전에서도 손흥민의 품격과 배려심이 돋보였다. 이 경기에서 손흥민은 상대 파울을 유도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클린스만 대표팀 감독은 에이스이자 팀의 ‘1번 키커’인 손흥민에게 “직접 차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손흥민은 후배 황희찬에게 기회를 양보했다. 손흥민은 “(황)희찬이가 ‘차고 싶다’고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힘을 내서 (골을) 넣었다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2015년 아시안컵 결승에선 호주에 연장 접전 끝에 1-2로 졌다. 당시 0-1로 뒤진 후반 막판 동점골을 넣었던 손흥민은 승부를 뒤집지 못하자 아쉬운 마음에 펑펑 눈물을 쏟았다. 3일 호주전 승리로 손흥민은 9년 전 패배를 설욕했지만, 그는 흥분하지 않았다. 손흥민은 “2015년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런 경기들, 경험 덕분에 축구선수, 사람으로서 여기까지 성장했다. (오늘 승리가 9년 전의) 복수라기보다는 축구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며 호주 선수들을 위로했다.

실력 면에선 말이 필요 없다. 호주전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포함, 이번 대회에서 세 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이강인과 함께 대표팀 내 최다 득점자다. AFC는 “마법 같은 실력을 갖춘 선수”라며 찬사를 보냈다.

‘월드클래스’ 손흥민의 말말말

◦ “나라를 위해 뛰는데 힘들다는 건 핑계일 뿐”
-지난 3일 호주전 승리 후 기자회견에서

◦ “늘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데, 오늘만큼은 그라운드에 들어가지 못한 선수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호주전 승리 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에게

◦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런 경기들, 경험 덕에 축구선수, 사람으로서 여기까지 성장했다.”
-호주전에서 9년 전 패배를 설욕한 뒤 기자회견에서

◦ “축구선수이기 전에 인간이다. 선수들을 흔들지 말고 보호해 달라”
-지난달 25일 말레이시아와 비긴 후 기자회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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