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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거점 이전·전기차 불황…K배터리 수출, 8년만에 꺾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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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한국의 배터리(2차전지) 산업이 연간 ‘100억 달러’ 고지를 코앞에 두고 수출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지난해 수출액은 8년 만에 감소하더니, 올해 들어선 1월 수출액이 1년 전보다 25% 넘게 감소했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의 생산거점 이전과 전기차 수요 둔화에 따른 2차전지 수요 감소가 영향을 미쳤다.

4일 관세청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2차전지 관련 수출액은 98억2600만 달러로 전년보다 1.6% 감소했다. 2차전지 수출액이 전년 대비 감소한 건 2015년(-3.3%) 이후 8년 만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문제는 새해에도 2차전지 수출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 2차전지 수출액은 5억9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26.2% 감소했다. 특히 정부가 분류하는 15대 주력 수출품 가운데 반도체·자동차를 포함한 13개 품목이 일제히 수출이 늘어난 가운데, 2차전지와 무선통신기기(-14.2%)만 수출이 감소했다.

산업부는 1월 2차전지 수출 부진과 관련해 “광물가격 하락과 주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의 전기차 생산계획 연기·축소에 따른 배터리 재고 조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제조사의 생산기지 이전을 2차전지 성장세가 둔화한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지난해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에 대응해 미국, 유럽연합(EU) 등에서의 공장 가동을 본격화했다. 한국 기업이 만든 배터리라도 해외에서 생산된 물량은 곧장 현지 고객사로 공급한다. 그만큼 해외 생산기지 제품이 한국의 수출 물량을 대체한다는 의미다.

LG에너지솔루션이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사 얼티엄셀즈를 세워 2022년 말부터 45GWh 규모의 미국 오하이오 1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한 게 대표적 사례다. 이런 변화로 지난해 EU로의 2차전지 수출은 전년보다 25.1% 줄었다.

전기차 시장 성장이 둔화한 점도 2차전지 수출에 악영향을 줬다. 현대차그룹 경제산업연구센터에 따르면 연간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률은 2021년 117.1%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 23.9%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지난달 25일 펴낸 보고서를 통해 수출 비중 4위인 중국의 경기회복 지연, 중국·한국 등 기업의 경쟁 심화 등을 지목했다. 지난해 중국에 대한 2차전지 수출액은 전년 대비 17.3% 감소했다.

반면, 2차전지 수출이 주춤하는 상황에서 중국 등으로부터 2차전지 수입이 빠르게 늘어 무역수지는 나빠지고 있다. 연간 2차전지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2019년 58억3000만 달러로 정점을 찍었다가 지난해 10억 달러로 급감했다.

글로벌 2차전지 시장에서 한국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중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 한국 배터리 3사의 합산 시장 점유율은 48.5%로 전년 대비 5.4% 떨어졌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안정적으로 원자재 공급망을 확보하고 시장점유율 유지에 힘써야 한다”며 “배터리 품목을 다변화하고 차세대 배터리 투자 등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고 장 실장은 제안했다. 미 공화당 경선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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