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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8개월 전대미문 시련, IMF가 남긴 뼈아픈 교훈 3가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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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6호 16면

손병두의 ‘IMF위기 파고를 넘어’ 〈11·끝〉 과연 대기업이 위기 주범이었나

한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은지 3년 8개월만인 2001년 8월 23일 지원자금을 전액 상환했다. 김대중 대통령(오른쪽 첫번째)은 이한동 총리(가운데)와 진념 경제부총리 등 70명을 초청해 IMF 체제 조기졸업을 기념하는 만찬을 열었다. [중앙포토]

한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은지 3년 8개월만인 2001년 8월 23일 지원자금을 전액 상환했다. 김대중 대통령(오른쪽 첫번째)은 이한동 총리(가운데)와 진념 경제부총리 등 70명을 초청해 IMF 체제 조기졸업을 기념하는 만찬을 열었다. [중앙포토]

2001년 8월 23일 한국은 빚을 모두 갚고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에서 경제 주권을 되찾게 되었다. 1997년 12월 3일 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지 3년 8개월여 만이었다. 당초 예정보다 2년 9개월이나 앞당긴 조기 졸업을 해 낸 것이다. 정부의 노력 뿐 아니라 금모으기 운동에서 보듯 4000만 국민이 하나 되어 고통을 분담한 결과였다. 한편으로는 제 살을 도려내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한편으로는 악조건 속에서도 밤낮없이 공장을 돌리고 해외 시장을 뚫어 부를 창출해 낸 기업들의 공로 또한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제사회는 한국의 조기 졸업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감내했던 우리 국민들에게 IMF 졸업은 작은 이정표에 불과했다. IMF 체제란 터널을 빠져 나온 뒤의 한국 사회는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3년 8개월 동안 IMF의 가혹한 프로그램과 우리 정부의 추가적인 조치로 개혁 대상이 된 대기업들은 엄청난 충격과 고통 속에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펼쳐야 했다. 30대 그룹 중 11개 그룹이 해체되고 8개 그룹이 30대 그룹에서 탈락했다. 해체된 11개 그룹은 대우, 쌍용, 동아, 고합, 진로, 동양, 해태, 신호, 뉴코아, 거평, 새한이었다. 30대 그룹 밖에서도 5개 그룹이 해체됐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이끌어 가던 기업들은 외환위기의 격랑에 밀려 흑자도산을 했다.

30대 그룹 중 11곳 해체, 8곳 탈락

이런 어마어마한 시련을 겪으면서 얻은 귀중한 교훈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첫째, 국제 채권단들이 어떤 이유로든 기존 차관 연장을 거부하거나 즉각적인 반환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통화 또는 금융제도가 붕괴된다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회장 클라우스 슈밥의 말대로 아무리 국가 경제가 건강하고 경쟁력이 높다 하더라도 자본 흐름의 갑작스런 역행이나 변화에서는 안전할 수 없다. 외환위기 직전까지 우리 정부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기본)이 건실하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고 큰소리 쳤으나 국제 자금 흐름과 속성을 읽는 데는 무지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를 만나 “말레이시아는 외환위기에 어떻게 대응했기에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지 않았나”고 물어봤다. 마하티르는 “국제 금융에 정통한 중앙은행장 중심으로 월가에서 경험을 쌓은 금융 전문가들 9명을 특별팀으로 구성하여 대책을 잘 강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우리도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다. 외환위기의 처음 상황에서 우리도 그런 팀을 꾸려서 대응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 하나 있다. 1997년 11월 19일 김영삼(YS) 대통령은 강경식 부총리를 경질하고 임창열 통상산업부 장관을 후임자로 임명했다. IMF 구제금융 신청 발표 이틀전이었다. 전장의 장수는 싸움 중에 말을 갈아타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데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는 중에 경제수장을 교체한 조치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강경식 부총리는 이미 16일 캉드쉬 총재를 만나 IMF의 지원을 요청한 상태였다. 협의 결과 지원 규모는 300억 달러로 하고 지원조건을 IMF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개혁 작업을 그대로 추진하고 IMF는 이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같은 합의 사항을 미국 재무장관과 일본 대장성에 알리고 19일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일이 진행됐다. 그런데 19일 돌연 경제부총리가 교체되었다. 신임 임창열 부총리는 기자회견에서 IMF 지원 요청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IMF는 당황했을 것이다. 이틀 뒤인 21일 사태를 파악한 임 부총리는 IMF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때부터 IMF의 주도 하에 지원협의가 진행되면서 모든 결정권이 IMF와 미국 재무부로 넘어갔다. IMF는 구제금융을 주는 대신에 공공부문, 금융부문, 기업부문, 노동부분에 대한 가혹한 처방전을 내밀었다. 만일 그 전에 강경식 부총리가 캉드쉬 총재와 사전 협의한대로 구제금융자금을 받되 한국 정부 주도 하에 경제 운용을 해 간다는 약속을 지켰더라면 우리 경제가 연착륙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렇더라면 결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1997년 11월 16일 당시 강경식 경제 부총리.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캉드쉬 IMF총재와 회담한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 [중앙포토]

1997년 11월 16일 당시 강경식 경제 부총리.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가 캉드쉬 IMF총재와 회담한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 [중앙포토]

둘째로 외환 관리와 금융 감독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외환위기는 외환 관리의 실패에서 온 것이다. 당시 우리 금융 시스템은 낙후돼 있었고 글로벌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외환위기 극복 전략에 있어서도, 위기는 외환 부족을 유발한 금융 시스템의 붕괴에서 온 것인 만큼 김우중 회장의 주장과 같이 단기적으로는 수출 증대를 통해 달러를 확보해 IMF에서 빌린 빚을 빨리 갚고, 장기적으로는 금융 시스템의 선진화와 기업의 체질 개선을 도모하는 전략을 구사했어야 했다고 본다. 기업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회계 처리를 하고 현금 흐름을 중시하여 흑자도산을 막았어야 했다.

셋째로 국민정서도 반기업 정서와 부(富)에 대한 질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배고픈 것은 참지만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도 있다. 이런 정서 속에서 세계적 기업이 나오기 어렵다.

과연 외환위기 당시에 쏟아진 비난처럼 대기업이 위기의 주범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냉철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IMF 사태 이전에는 한국 기업의 신용을 높이 평가했는데 하루아침에 외환위기의 주범이란 낙인이 찍히고 만 것은 어찌된 일인가. 기업을 환경 적응업이라고도 한다. 주어진 여건 속에 가장 효율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 기업이다. 기업은 시장에서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흥망이 결정된다. 기업은 비올 때를 대비해 우산을 준비하고, 햇볕이 쨍쨍할 때를 대비해 양산을 준비한다. 그래서 사업을 다각화한다. 또 한국처럼 부품 시장이 덜 발달한 곳에서는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부품생산을 내부화한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이유들로 기업의 계열사들이 늘어난다. 이를 두고 선단식 경영, 문어발식 경영이라고 비난한다. 기업을 창업할 때 100% 자기자금으로 할 수 없다. 자본시장이 덜 발달해서 증시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우니 금융기관에 대출을 받아 시작한다. 자연히 부채 비율이 높아진다. 은행에서 지급보증을 요구하니 계열사들이 상호지급보증을 해 주면서 금융을 융통해 써왔다. 아무튼 그 결과 고도성장도 이루고 일자리도 많이 창출해 낼 수 있었다.

2022년 삼성전자 낙수효과 280조원

해외진출을 할 때는 예컨대 중동지역의 경우 먼저 종합상사들이 상품을 팔고 그 기반 위에 건설 회사들이 나가고 다음에는 제조 회사들이 나가는 식이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굴지의 글로벌 기업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대기업이라고 해도 외국기업에 비하면 중소기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투자를 해도 좁은 한국시장만 보고 하지 않는다. 자원이 없고 시장이 없는 우리는 해외시장에 수출을 해서 먹고 사는 매우 취약한 경제 체질이다. 경기는 호황·불황을 겪으며 사이클을 그린다. 어떤 업종은 특정 시점에서 보면 일시적으로 과잉투자이지만 호황이 오면 해소가 된다. 불황기에 과잉투자를 비난하긴 쉽지만 호황기엔 진작 더 많은 투자를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흔히들 대기업은 고용인원이 적어 낙수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한다. 삼성전자만 봐도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022년 협력업체와 가계 등으로 이전된 삼성전자의 낙수효과는 280조원, 국가 예산 607조의 절반에 육박한다. 하나의 대기업이 생기면 거기에 부품을 공급하는 많은 중소·중견기업이 생겨난다. 그것을 합치면 고용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대기업에 대한 지원을 재벌 특혜로 욕하기는 쉽다. 법인세를 감면해 주면 부자 감세로 몰아 부친다. 대마불사란 신화를 깬다며 대기업을 죽인 것을 통쾌하게 이야기 한다. 그러나 그로 인한 국가적 손실은 얼마나 큰 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가령 지난해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한국과 폴란드가 원 팀이 되어 진출하기로 한 것은 누구의 힘인가. 대우가 문을 열고 LG, 삼성이 뒤따라 생산기지를 건설한 덕분이 아닌가.

한강의 기적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기업이 앞장서고 많은 중소·중견 협력업체들이 뒤따라가며 성장을 일궈 낸 것이다. 대만은 늘 한국을 부러워한다. 대만에는 대기업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TSMC 같은 세계적 반도체 기업이 생기니까 대만이 우리를 능가하기 시작했다. 일본도 대기업들이 주력함(主力艦)이 되어 세계 시장을 향해 나아가면, 많은 중소 협력 업체들이 보조함(補助艦)이 되어 좌우에서 호위하는 선단 방식으로 성장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테슬라 같은 초일류 글로벌 기업들이 지금 미국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지 않나.

나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할 무렵인 2003년 2월, 6년간 재직했던 상근부회장을 그만두고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을 떠났다. 나는 IMF 위기를 기업인들과 함께 헤쳐나오는 동안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일했기 때문에 전경련을 떠날 때에도 아무런 미련이나 후회가 없었다. 그 뒤 몇몇 출판사에서 IMF 사태 때 전경련이 담당했던 빅딜(Big Deal) 이야기를 쓰자고 제안해 왔으나 정중히 사양했다. 이제는 IMF 사태로부터 만 26년 넘게 세월이 흘렀다. 정부 당국자로 있던 몇몇 분들이 그동안 IMF 위기 극복 과정에 대해 글을 남겼다. 이제 민간에서도 IMF의 파고를 어떻게 넘었는지, 경제위기의 소용돌이를 우리 기업들이 헤쳐온 이야기들을 남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겪었던 이야기를 기업 측에 있던 나의 시각으로 되돌아보며 얻는 교훈이 있다면, 비록 처한 상황은 그때와 다를지언정 우리 경제의 내외 환경이 어려운 지금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작은 부분만 바라보는 우를 범할 가능성도 있고 나의 겪었던 일이 그 사안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만, 나의 작은 체험과 그 시대에 살았던 분들의 체험이 모여 역사를 이루어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글을 쓰게 되었다. 부족한 글을 읽고 격려해 준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손병두. 동서투자자문 사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경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서강대 총장, KBS 이사장, 호암재단 이사장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전경련 상근부회장으로서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절충하며‘빅딜’과 구조조정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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