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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남편·상간녀에 복수 '내남결' 인기…저출산과 뜻밖 연결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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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남편의 배신 때문에 죽음을 겪은 여성이 화려한 모습으로 부활해서 남편과 상간녀에게 복수한다.’ 요즘 인기 많은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줄여서 ‘내남결’)와 15년 전 대히트한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공통된 내용이다. 동명의 인기 웹 소설을 바탕으로 한 ‘내남결’은 주인공이 정말로 사망했다가 ‘회귀’한 것이고, ‘아내의 유혹’은 죽을 뻔했다가 살아나서 눈 밑에 점 찍고 다른 사람인 척하며 돌아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월하의 공동묘지’가 나온 196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2024년에도, ‘배신당한 조강지처의 복수’는 변함없이 인기 소재다.

유명인 불륜에 엄격, 외신 놀라
외도 배우자와 결별 어려운 탓
한부모 가정 80% 양육비 못받아
미혼들 “비혼이 리스크 줄여”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한 장면. 주인공(박민영)은 죽은 후 회귀해서 배신자 남편에게 복수한다. [사진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한 장면. 주인공(박민영)은 죽은 후 회귀해서 배신자 남편에게 복수한다. [사진 tvN]

이런 드라마의 주요 소비층은 여성, 특히 중장년층 기혼 여성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네이버 뉴스의 댓글 작성 통계에서 짐작할 수 있다. 평소 네이버 뉴스 댓글은 40~60대가 주로 달며 여성의 비중은 30%를 밑돈다. 예외적으로 성 평등 이슈 뉴스에는 여성 댓글 비중이 높아지는데 이때 연령은 20~30대가 많다. 반면에 유명인의 불륜 뉴스에는 40~50대가 주로 댓글을 달며, 여성 댓글이 절반을 넘는다. 물론 비난 댓글이 압도적이다. 한마디로 ‘불륜으로 인한 가정의 파괴’는 중장년층 여성이 특히 관심을 갖고 분노하는 주제라는 이야기다.

“기혼여성, 불륜 혐오·공포 커”

지난달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고(故) 이선균 배우의 극단적 선택을 다루면서 앙트완 코폴라 성균관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한국은 공인의 도덕성에 지나치게 엄격하며 일종의 청교도주의가 작용한다고 했다. 기혼인 홍상수 감독과 연인 관계가 된 김민희 배우도 같은 맥락으로 한국 사회의 배척을 받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하지만 단순히 한국이 도덕주의가 강하기 때문일까? 그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평론가는 말했다. “봉준호 감독 같은 세계적인 거장이 나서서 고인의 수사 정보 유출을 규탄했지만, 대중의 반향은 크지 않았다. 이 이슈가 커지려면 여성 커뮤니티들이 동참해야 하는데, 고인의 유흥업소 출입에 실망한 여성들의 냉담한 반응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 기혼여성들의 불륜에 대한 혐오와 공포는 특히 크다.”

여성 커뮤니티에는 2016년 간통죄 폐지를 한탄하며 불륜을 사적으로라도 응징하려는 움직임을 종종 볼 수 있다. 소위 ‘상간녀’의 신상을 적은 현수막을 그의 직장 등에 설치한다든가, 인터넷에 신상을 공개하고 같이 비난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 등이다. 물론 이런 사적 응징을 우려 섞인 눈으로 보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특히 남편은 놔두고 남편의 외도 상대만 공격하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 젊은 비혼여성이 많은 A그룹과 중장년층 기혼여성이 많은 B그룹의 논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양육비 불이행 부모 신상 공개 사이트 ‘배드파더스’의 구본창 대표가 지난 1월 4일 대법원 판결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양육비 불이행 부모 신상 공개 사이트 ‘배드파더스’의 구본창 대표가 지난 1월 4일 대법원 판결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A “남편과 상간녀 둘 다 나쁜데 왜 남편은 응징하지 못하고 결혼 유지하면서 상간녀만 공격하는가? 남편과 상간녀에게 소송 걸어서 위자료 받고 깔끔하게 이혼하고 내 갈 길 가면 되지 않는가?”

B “이혼이 어디 쉬운 줄 아는가? 아이들이 있으면 쉽지 않다.”

A “경제적으로 능력 없는 걸 아이 핑계대지 마라. 이런 사람들이 ‘너희 때문에 못 헤어졌다’면서 아이들에게 죄책감 강요하더라.”

B “현실을 너무 모른다. 아이 양육 때문에 경력 단절된 전업주부가 많다. 이혼하면 대개 엄마가 아이를 맡는데 직장 일과 홀로 양육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전 남편으로부터 양육비 제대로 못 받는다는 기사도 못 보았는가?”

이렇게 논쟁하다가 젊은 비혼여성들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그래, 이혼도 아이 있는 여자에게는 쉽지 않고 불리하구나. 처음부터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는 게 최고다.”

이와 관련해서 윤지상(전 대전가정법원 부장판사)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재산 분할은 예전에 비해서 공평하게 잘 되고 있다. 일정 기간 혼인 기간이 되면 대부분(의 재산이) 분할 대상이 되고, 요즘은 가정주부의 경우도 거의 5대5로 재산을 받는다. 하지만 재판 이혼보다 협의 이혼이 훨씬 많은데 협의 이혼할 때는 재산분할을 법원에서 따로 챙겨주지 않으니 재산분할 자체를 못 받는 분들도 종종 있다. 또한 협의이혼 과정이 지치고 힘들어서 양육비 안 받고 이혼하는 경우도 많다.”

이혼 후 엄마가 아이를 양육하는 비율이 10여 년 전에는 80~90%였고 지금은 그보다 줄었으나 여전히 70%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2021년 통계에 따르면 한부모 가정의 80.7%가 비 양육자로부터 양육비를 못 받고 있다. 따로 소송을 제기하고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길고 힘들기 때문이다.

양육비 법적 해결에 오래 걸려

그 어려움에 대해 윤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면 양육비 이행이 석 달 밀려도 소 제기 엄두를 못 냅니다. 변호사비가 더 들테니까요. 1년 정도 밀렸을 때야 이행 명령 청구라는 걸 합니다. 그래서 이행 명령을 받아내면 그걸 가지고 이제 과태료나 감치 처분을 상대방한테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걸 또 재판을 해야 돼요. 감치나 과태료 처분까지 받아내는 데 한 1년 정도 걸려요. 그동안 양육비는 2년 밀리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빠르고 실효성 있는 양육비 이행을 위해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온라인 사이트 ‘배드파더스’(현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가 생겼다. 이 사이트는 실제로 1500건이 넘은 양육비 이행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사이트 운영자 구본창 씨에 대해 지난달 대법원은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하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구 씨는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출산을 장려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

물론 이것만이 저출생의 이유는 아니다. 저출생 현상은 무자녀나 한 자녀를 선호하는 부부가 증가하는 것부터 최근에는 젊은 여성 버금가게 젊은 남성도 결혼을 기피하는 것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고 있다. 그러니 그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양육비 이행 문제도 그중 하나인 것이다. 한국이 유달리 ‘조강지처 복수극’이 인기 많고 유명인의 불륜에 엄격한 배경에는 이혼 후 한부모 가정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 것에 대한 주부들의 두려움이 숨어있다. 이것이 해결될 때 저출생 현상도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