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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혜수의 카운터어택

해병대 캠프는 도시 전설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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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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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설(urban legends)’이라는 게 있다. 증명되지 않았지만 사실처럼 회자하는 얘기다. 예컨대 ‘밤에 피리(또는 휘파람)를 불면 뱀이 나온다’(사실이면 파충류 연구의 신기원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켠 채 자면 질식사한다’(사실이면 영화 ‘마누라 죽이기 2’도 만들만하다) 같은 거다. 미국 민속학자 얀 해럴드 브룬번드에 따르면, 도시 전설에는 세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 일상적 이야기일 것 ▶실제적 신념에 근거할 것 ▶의미 있는 메시지 또는 도덕 규범을 나타낼 것 등이다. 내용의 일부만 사실인데 전체적으로도 그럴듯한 경우가 대다수다.

지난달 5일 덕수고 졸업식 직후, 이 학교 야구부 졸업생들이 폐교를 앞둔 행당동 교정 마운드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연합뉴스]

지난달 5일 덕수고 졸업식 직후, 이 학교 야구부 졸업생들이 폐교를 앞둔 행당동 교정 마운드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연합뉴스]

스포츠 쪽에 ‘경기고 축구부’라는 도시 전설이 있다. 내용은 이렇다. 고교 비평준화 시절 경기고에 축구부와 야구부가 있었다. 공부만 하는 학교라서 두 팀 모두 대회에 나가도 성적이 좋지 않았다. 동창회에서 한 팀을 없애기로 했다. 제비뽑기로 종목을 정해 두 팀 간 맞대결로 없앨 팀을 정하기로 했다. 종목은 축구로 정해졌다. 그런데 야구부가 7-1로 이겨 축구부가 해체됐다는 것이다. 내용의 일부는 사실(경기고는 현재 야구부만 있고, 1970년 서울시 중고교 학년별 축구대회에서 우승했다)인데다, 경기고라면 그럴 만하다고들 생각한 것 같다. 어쨌든 도시 전설로 남았다.

지난달 서울 성동구의 덕수고(옛 덕수상고) 행당동 교정에서 마지막 졸업식이 열렸다. 1910년 개교한 덕수상고(당시 공립수하동실업보습학교)는 1997년 덕수정보고로, 2007년 덕수고(일반계)로 개명했다. 도심 지역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2022년 학교를 위례신도시로 옮겼다. 행당동 교정은 폐교할 예정이다. 이런 얘기들이 와전돼 한때 “덕수고 야구부가 존폐 위기다” “덕수고 야구부가 경기상고와 통합된다” 등의 얘기가 돌았다. 학교 측에 확인했더니 덕수상고(덕수정보고) 야구부의 전통은 위례의 덕수고에서 잘 이어가고 있다. 도시 전설의 탄생을 지켜볼 뻔했다.

적어도 진실은 있다. 급격한 출생률 하락과 한 자녀 가정의 증가 탓에 운동선수 지망자가 급감했다고 한다. 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건 도심 학교만이 아니다. 학교 운동부도 그렇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성적이 부진해 말이 많았다. 부진의 근본 원인을 최근에는 인구 감소에서 많이 찾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스포츠 종합대회에서 과거 같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모든 걸 선수들의 정신력 해이 탓으로 돌렸다. 이어 해결책으로 ‘해병대 캠프 입소’를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아예 진천선수촌을 없애고 국가대표 훈련은 아예 해병대 캠프에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또 하나의 도시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