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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직구로…엔데믹 딜레마에 내수 부진

중앙일보

입력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가 해제되면 소비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와 달리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여행 대신 해외여행을 택하는 이들이 늘어난 데다, 해외직구액까지 역대 최대를 기록하면서다. 엔데믹이 되레 내수를 위축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해외여행객 1년 새 3.5배 늘어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매판매는 전년 대비 1.4% 줄면서 2022년(-0.3%)에 이어 2년 연속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감소 폭은 2003년(-3.2%) 이후 20년 만에 최대다. 내수 부진이 길고, 깊어졌다는 뜻이다. 정부는 고금리와 고환율의 영향으로 소비가 줄었다고 설명했지만, 이뿐 아니라 해외여행과 직구(직접구매)가 증가한 것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거주자의 해외소비를 의미하는 국외소비지출은 지난해 1분기 전년 같은 분기보다 85.9% 늘었다. 2분기(85.1%), 3분기(80.8%) 등 지난해 내내 1년 전과 비교해 80% 넘는 증가율을 보였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해외여행 내국인 수는 지난해 2271만6000명으로, 전년(655만4000명)보다 246.6% 증가했다. 한국 밖으로 여행을 간 사람이 늘다 보니 국외지출이 덩달아 증가했다.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지갑을 열었다는 의미다. 쓸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인데 해외 소비가 늘면 그만큼 국내 지출은 줄어든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외국인여행객 회복 부진…경제성장도 둔화

코로나19 직전이었던 2019년 해외여행 내국인 수는 2871만4000명이었다. 지난해는 이때의 79% 수준이다. 반면 국내 방문 외국인 수는 지난해 1103만2000명으로, 2019년(1750만3000명)의 63% 수준에 그쳤다. 외국인 관광객 회복 속도보다 해외여행 증가 속도가 더 가파르다. 특히 중국인 국내 관광객은 지난해 201만9000명으로, 2019년(201만3000명)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내수 부진은 경제성장률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전년 대비 민간소비 증가율은 1.8%로, 전년(4.1%)보다 2.3%포인트 줄었다. 2019~2020년을 제외하곤 2013년(1.7%) 이후 최저 수준이다. 코로나19 영향권에서 벗어나면서 발생한 해외여행 증가가 국내 소비 증가세를 꺾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승철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최근 흐름을 보면 경제성장률 자체가 낮아진 데다 민간소비 또한 성장률보다 하회하는 흐름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연말을 해외에서 보내려는 출국 인파로 붐비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8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연말을 해외에서 보내려는 출국 인파로 붐비고 있다. 뉴스1

내수 부진은 올해도 이어질 예정이다. 여행업계에선 당장 이달 설 연휴기간 해외 여행객이 코로나19 확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전체 GDP를 고려할 때 여행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건 아니지만 국외에서의 지출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며 “현재로썬 금리가 내려가지 않는 한 내수가 반등할 만한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싼 제품 수요↑ 중국 직구 폭증

내구재 등을 소비하는 패턴도 바뀌었다. 국내 쇼핑몰을 이용하는 대신 알리익스프레스 등 해외 직구 사이트를 통한 소비가 증가했다. 지난해 온라인 해외직접구매액은 6조756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5조3240억원)보다 26.9% 늘면서 역대 최고치다. 값이 싼 중국산 제품의 공세가 본격화하면서 내수를 위협하는 모양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실제 중국 직접구매액이 3조2873억원으로 1년 새 2배 넘게 늘면서 전체 직구의 48.7%를 차지했다. 이전까지는 미국이 직구 1위 국가였는데 중국에 역전당했다. 의류·패션 상품(43.5%), 생활·자동차용품(35.9%), 스포츠·레저용품(65.5%) 등 생활용품에서 직구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고물가 영향으로 조금이라도 가격이 싼 제품을 찾아 중국 직구로 눈을 돌렸다는 풀이가 나온다.

허경옥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국내 제품 가격이 급격히 올랐다”며 “제품 품질이나 환불 어려움 등으로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고금리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값싼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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