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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극심한 교통지옥 온다"…재건축 날개 단 분당·일산 날벼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슈현장]

서울백병원 광역버스 정류소가 퇴근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백병원 광역버스 정류소가 퇴근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이대로라면 정말 큰일 납니다. 더 극심한 교통지옥이 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해요.”

 대한교통학회(회장 정진혁 연세대 교수)가 꾸린 ‘1기 신도시 정비 특별위원장’을 맡은 금기정 명지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이렇게 우려를 쏟아냈다. 대한교통학회(이하 학회)는 교통 분야 전문가 4500여명과 150여개 기관·단체를 회원으로 둔 국내 최대 규모의 교통 관련 학술단체로 지난해 해당 분야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꾸렸다.

 재정비 논의 과정을 분석해온 금 교수가 ‘교통지옥’을 우려하는 까닭은 이랬다. 지난해 말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1기 신도시를 비롯한 노후도시를 대대적으로 재정비하는 내용을 담은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국토교통부가 대상 지역과 용적률 법정상한 규정 등을 담은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법적·제도적 준비가 착착 진행되는 모양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 일대 아파트 밀집지역 전경. 중앙일보

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 일대 아파트 밀집지역 전경. 중앙일보

 관련 업계와 주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뭐니뭐니해도 용적률·건폐율 같은 건축규제의 완화 폭이다. 얼마나 높게, 크게 재건축이 가능하냐에 따라 사업성과 부동산 가치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시행령에서 용적률을 법정상한의 150%(1.5배)까지 상향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렇게 되면 3종 주거지역 아파트는 종상향 등을 거치면 산술적으론 최대 750%까지 용적률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같은 면적의 토지에 재건축한다고 가정하면 20층이던 아파트를 헐고 최고 75층까지 지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렇게 되기는 어렵고, 300~400% 사이가 될 거란 관측이 유력하다. 이 정도만 해도 다른 재건축과 비교하면 완화 폭이 상당하다는 평가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 속에 교통문제는 후순위로 밀려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대규모 재정비가 이뤄지면 거주인구가 크게 늘고, 서울 등지를 오가는 통근자 수와 차량 수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미리 대비를 안 하면 지금도 가뜩이나 막히고 힘겨운 출퇴근·통학길이 더 악화할 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마침 시행령이 입법예고된 날 열린 학회 주최의 1기 신도시 교통정책토론회에서도 여러 우려사항이 제기됐다. ‘도로분야: 지·정체 과연 해결 가능한가’란 주제로 발표한 김홍태 신명이엔씨 상무에 따르면 분당신도시를 단순 리모델링할 경우에도 1만 1800세대가량 증가하고, 교통량도 하루 평균 3만대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높은 용적률을 적용받는 재건축이 진행되면 이 규모는 더 커지게 된다.

 일산 등 다른 1기 신도시도 양상은 별반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김 상무는 “1기 신도시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교통량도 문제지만 주변에 조성된 2기·3기 신도시의 광역교통 수요가 상당부분 1기 신도시를 거쳐서 가기 때문에 도로 혼잡이 더 심하다”고 분석했다. 분당과 일산의 서울방향 도로 통행 비율은 각각 49.4%와 33.4%였다.

 광역버스와 전철도 마찬가지다. 하희동 제온기술 대표가 주제 발표한 ‘대중교통 부분: 수요변화에 대응은 가능한가’란 자료에 따르면 대중교통 역시 인접한 신도시의 인구증가와 공간적 팽창으로 인해 1기 신도시 자체통행량에 경유통행량까지 가중돼 상당한 혼잡을 빚는 데다 통근시간도 길어졌다. 수도권의 평균 통근시간은 81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8배나 된다.

지난달 31일 열린 대한교통학회 주최 '1기 신도시 교통정책토론회' 모습. 대한교통학회

지난달 31일 열린 대한교통학회 주최 '1기 신도시 교통정책토론회' 모습. 대한교통학회

 예를 들어 분당은 용인과 동탄, 일산은 파주 운정, 중동은 김포 검단, 평촌은 산본 등 인접지역에서 오는 수요가 겹친다는 것이다. 발표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별다른 교통대책 없이 대규모 재건축이 추진되면 1기 신도시는 물론 주변 신도시까지 더 극심한 교통대란을 피하기 어려울 거라고 입을 모았다.

 토론에 나선 전문가들은 선제적인 교통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김호정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도시 재정비로 인해 야기될 도로와 대중교통, 주차장 문제 등과 관련한 개선책이 꼭 필요하다”며 “지자체 관할 시설과 정부가 담당하는 광역교통 계획 간에도 유기적인 연결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권일 한국교통대 도시·교통공학전공 교수는 “현재보다 2배 정도 가까운 용적률이 적용될 경우 기존 신도시 내부에 있는 기반 시설로는 감당이 어려울 것”이라며 “신도시와 서울 등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광역교통체계 역시 감당이 될지 세밀하게 따져보고 선제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파주, 일산과 서울을 잇는 자유로는 상습정체구간으로 악명이 높다. 중앙일보

파주, 일산과 서울을 잇는 자유로는 상습정체구간으로 악명이 높다. 중앙일보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1기 신도시 가운데 선도사업 지구를 정할 때 교통여건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정부 차원의 주요 교통 관련 인프라 건설계획이 이미 나와 있는 걸 반영해서 상대적으로 교통 여건이 나은 지역을 선도사업 지구로 지정해 먼저 정비에 나서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며 “이렇게 ‘선교통 후개발’ 원칙에 따라 재정비 순서와 계획을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병길 국토교통부 도시정비기획준비단장은 “도시별로 기본 계획을 수립하면서 인구와 밀도 계획을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교통수요를 예측하고, 필요한 교통시설 확충계획을 연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많은 사례에서 보듯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진 뒤 해결은 무척이나 어렵다. 일찌감치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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