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대군 후손 살던 집은 은화 300냥...여자 노비도 당당히 부동산 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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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효령대군 후손이 소유했던 종로구 기와집의 1724년 가격은 은화 300냥(동전 약 600냥)이었다. 당시 은화 300냥은 현재 4000만원 이상 가치가 있다고 한다. 이 집 가격은 19세기 중반까지는 서서히 오르다가, 19세기 말에는 동전 2만8000냥으로 폭등했다. 100년 넘게 안정적이던 집값이 수십 년 사이 40배 넘게 뛰어오른 것이다. 폭등 배경에는 당시 한성부(현 서울시) 집값 상승과 조선 말기 인플레이션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한성부 부동산 매매 문서. 그간의 거래 내역을 길게 이어 붙였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조선시대 후기의 한성부 부동산 매매 문서. 그간의 거래 내역을 길게 이어 붙였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은 최근 소장유물자료집14 ‘조선후기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1’을 발간했다고 1일 밝혔다. 자료집에는 조선후기 서울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 거래된 토지·가옥 매매문서 304점이 담겨있다. 각 고문서 도판과 원문을 싣고, 전문가 해설을 추가해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조선후기한성부토지·가옥매매문서1' 발간 #현대 못잖은 꼼꼼한 부동산 거래 내역 관리 눈길

조선시대에도 부동산 문서 관리 철저  

서울역사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소장유물자료집14 ‘조선후기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1’. 자료집에는 조선후기 서울의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 거래된 토지·가옥 매매문서 304점이 담겨있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이 최근 발간한 소장유물자료집14 ‘조선후기 한성부 토지·가옥 매매문서1’. 자료집에는 조선후기 서울의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 거래된 토지·가옥 매매문서 304점이 담겨있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조선시대에도 부동산은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부동산을 매매할 때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 소유권 이전을 분명히 했다고 한다. 또 한성부(현 서울시)에서는 부동산 거래를 관리하기 위해 거래 당사자와 증인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공증문서를 발급했다. 부동산 관련 문서 관리도 철저했다. 부동산 매매과정은 문서로 작성해 소유주가 보관했다가 매도할 때 새로운 계약서를 이어붙여 매수인에 양도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측은 "덕분에 이 문서는 거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이력서이자, 당시 경제활동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역사자료"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에 발간된 자료집에는 장기간 거래된 내용이 다수 수록돼 있다. 동대문 밖 농지를 거래한 한 문서는 36점이 줄줄이 이어져 있어 길이만 12m에 이른다. 여기에는 1609년부터 1765년까지 150년 동안 토지 거래 이력과 토지 소유자가 누구인지 등이 담겨있다.

노비·여성·중인 등도 부동산 거래 주체

부동산 거래 내용을 통해 당시 사회상도 엿볼 수 있다. 자료집에는 노비가 자신의 집을 매도한 사례도 꽤 있다. 신분을 사비(私婢·개인 소유의 여종)로 기록한 효생이라는 인물은 지금의 종로 공평동 부근에 기와 5칸, 초가 3칸 집을 소유했다가 은화 150냥에 매도했다. 서울역사박물관 박현욱 학예연구부장은 "노비가 경제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상당한 재산을 소유하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노비 외에도 여성·군인·중인 등 다양한 부류가 부동산을 거래한 사실도 담겨있다.

조선 후기 부동산 매매문서의 서명 부분. 손 모양을 그려넣은 것이 인상적이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조선 후기 부동산 매매문서의 서명 부분. 손 모양을 그려넣은 것이 인상적이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한편 서울역사박물관은 올해 안에 한성부 서부·남부·북부 소재 토지·가옥 매매문서 200여 점을 수록한 소장유물자료집 2편을 이어서 발간할 예정이다. 소장유물자료집은 서울역사박물관 내 기념품점과 서울특별시청 지하에 있는 서울책방에서 살 수 있다. 온라인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에서 무료열람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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