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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훈의 음식과 약

위 건강에 정말 해로운 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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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매운 음식은 위궤양을 일으키지 않는다. 사람의 위는 튼튼하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이미 위궤양이나 위염을 앓고 있는 경우 일시적으로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없는 위궤양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오렌지 주스처럼 유기산이 많이 들어있는 음료를 마셔도 위에는 별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위산은 주스 속 유기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산, 염산이다. 그런 산도 버텨내는 위가 주스를 마신다고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작다. 마찬가지로 빈속에 커피를 마셔도 위를 손상하지는 못한다. 음식과 위산으로부터 위벽을 보호하기 위해 점액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13년 일본에서 8013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 커피를 마시는 것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위식도 역류질환과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었다.

음식을 한 그릇에 담아 나눠 먹는 식습관으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감염될 수 있다. [중앙포토]

음식을 한 그릇에 담아 나눠 먹는 식습관으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감염될 수 있다. [중앙포토]

그렇지만 아침 공복에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리다는 사람이 있다. 위가 아니라 식도가 자극을 받아서 그럴 수 있다. 위는 산에 대한 방어벽을 갖추고 있지만, 식도는 비교적 취약하다. 위에서 식도 쪽으로 위산과 음식물이 역류하게 되면 식도 점막이 자극을 받아 속쓰림을 느낄 수 있다. 간혹 주스를 마시고 속이 불편한 것도 위가 아닌 식도가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이런 역류를 막기 위해 위와 식도 사이에는 괄약근이 존재한다. 과도한 카페인, 초콜릿, 알코올, 페퍼민트, 고지방식은 사람에 따라 괄약근을 느슨하게 하여 위식도 역류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들 음식을 먹고 나서 속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덜 먹는 게 좋다.

스스로 보호하려는 위의 노력에 힘을 보태고 싶다면 음주, 흡연을 피하는 게 좋다. 알코올은 위점막을 손상해 방어벽을 약화시킨다. 니코틴은 위점막을 보호하는 물질(프로스타글란딘)을 감소시키고 위벽을 손상하는 산화물질을 만들어내어 위를 공격하도록 만든다. 위에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음식보다는 약이다. 소염진통제는 직접 위 점막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위를 보호하는 물질이 덜 생기게 한다. 소염진통제를 오래 복용하면 위궤양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 의사, 약사와 상담하지 않고 장기간 소염진통제를 습관적으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위궤양이 있을 때는 일반적 소염진통제가 아니라 위점막에 영향이 덜한 약을 쓰는 게 낫다. 위에 손상을 줄여줄 수 있도록 위산분비를 줄여주는 약을 함께 쓰기도 한다.

한국인의 위에 가장 큰 적은 매운 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다. 헬리코박터균 감염은 위염, 위궤양, 위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다. 개인용 접시에 덜어 먹지 않고 음식을 나눠 먹다 보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에 감염되기 쉽다. 위궤양을 피하고 싶다면 음식을 나눠 먹는 행위를 피하자.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