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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誰能出不由戶(수능출불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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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담을 넘거나 부수는 불법을 행하지 않는 한, 누구라도 밖으로 나가려면 문을 거쳐야 한다.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다. 몸이 드나드는 문만 그런 게 아니라, 정신이 드나드는 마음의 문 또한 그렇다.

유가(儒家) 정신으로 세상을 보고자 하면 유가의 ‘문’을 통해 나가야 하기에, 공자는 “누가 능히 문을 거치지 않고 나갈 수 있으랴”라고 했다. 도가(道家)도 마찬가지이고, 불교나 기독교 또한 그렇다.

誰:누구 수, 能:능히 능, 由:말미암을 유, 戶:출입문 호. 누군들 문을 거치지 않고 나갈 수 있 으랴. 25x68㎝.

誰:누구 수, 能:능히 능, 由:말미암을 유, 戶:출입문 호. 누군들 문을 거치지 않고 나갈 수 있 으랴. 25x68㎝.

각자가 택한 문으로 들어가서 그쪽으로 난 길(道)을 걷다 보면 결국 문밖의 무한히 넓은 ‘보편’이라는 세계에서 다 만나게 된다. 문제는 문을 찾지 못해 갇혀있는 자의 폐쇄성이다. 송나라 스님 수단(守端) 선사는 ‘문을 뚫으려는 파리(蠅子透窓)’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빛을 찾으려 창호 문종이를 뚫으려니 얼마나 힘들겠나? 부딪치고 또 부딪치다가 홀연히 들어올 때 문을 찾아내고선, 비로소 조금 전까지 눈이 멀었었음을 깨달았네(爲愛尋光紙上鑽 不能透處幾多難 忽然撞著來時路 始覺平生被眼瞞).”

폐쇄 불안을 떨치려 없는 문을 뚫으려는 광기를 부리지 말고, ‘드나드는’ 문이 동일한 문임을 깨달아 문을 통해 길(道)로 나와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 폐쇄는 광란의 전쟁을 부르고 소통은 상생의 평화를 낳는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