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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212) 한계령의 밤은 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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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한계령의 밤은 길다
오종문(1959∼)

하루의 무거움, 혹은
절망에 공감하는 밤

가자,
이 눈가림의 세월
벌목하는
세상 속으로

인간이, 사람들만이
나를 살릴 것이다.
-우리시대현대시조100인선68(태학사)

현대의 시절가조

긴 겨울의 마지막 달 2월이다. 한계령에서 겨울밤을 지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루의 무거움이, 엄습해오는 절망감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그러나 이곳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우리는 벌목하는 세상 속으로 나서야 한다. 아무리 실망스럽더라도 나를 살리는 것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계령의 긴 밤이 주는 교훈이라고 하겠다.

그의 시조 한 수를 더 읽는다.

“가자, 녹수청산 병들지 않는 그리운 땅/내 마음의 나뭇잎 꽃바람 돌멩이들/한 천 년 그냥 살아서 노래 불러야 하리” - 「이 나라 녹수청산」 셋째 수

오종문은 유구한 시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현대의 시절가조를 노래하는 가인임을 여기에서 확인한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