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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글로벌 패러다임 역행하는 ‘토양 불소기준 완화’ 반드시 철회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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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기고 최상일 광운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

불소는 인체독성참고치(RfD)가 0.04mg/kg/day로서 구리 0.14, 아연 0.3보다 낮아 상대적인 인체 독성이 매우 강하다. 외국 보고서에 따르면 불소에 대한 노출은 인체의 거의 모든 장기에 영향을 미치며, 특히 소아와 어린이, 신장 또는 갑상선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불소를 섭취하면 건강상 유해성이 더욱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2023년 대한주택건설협회는 불소 오염토양에 대해 국가가 제정한 토양오염 법적 기준치가 매우 낮으니 현재의 400mg/kg보다 높은 값으로 완화를 요구하는 규제개혁심판을 신청했으며, 이에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는 지난해 9월 25일 환경부에 인체·환경에 위해가 없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우려 기준안을 올해 상반기까지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2023년 11월 1일자 모 신문기사를 보면 ‘미국 8배, 일본보다 10배 세계 최강 불소 규제’라는 제하로, 우리의 불소 토양오염기준이 너무 강해 공사 기간 지연 및 공사비가 증가되고 있다는 대한주택건설협회의 주장을 그대로 뒷받침하고 있다. 즉 환경오염 기준치는 국민의 행복권을 담보로 한 중요한 수치로 분명히 규제가 아님에도, 필요에 의한 수치만 골라 비교함으로써 마치 과대 규제인양 보도하고 있다. 그런 식의 비유라면 덴마크는 우리의 400mg/kg보다 무려 20배 강한 20mg/kg을 토양 기준치로 설정하고 있다.

최근 자연기원 불소 함유토양에 대한 용출 연구에서 정제수로만으로도 전 함량 대비 0.03~2.43%가, 산성비에 노출되는 경우 0.17~31.7%까지 용출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포항-경주 지역 418개 간이상수원 지하수의 광범한 수질조사 결과 다수의 시료에서 불소 농도가 먹는 물 기준치(1.5 mg/L)를 초과했다. 따라서 위해성 평가로 정립된 현행 불소 우려기준 400mg/kg과 일본·독일·스위스 등과 같이 지하수·지표수를 연계하는 기준을 함께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토양 불소 기준 운영국가 중 표본이 된 9개국(리투아니아·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체코·캐나다·독일·스위스·일본·덴마크) 등이 농작물 오염, 지하수 오염으로 인한 인체 위해관리를 위한 기준치 운영하고 있다. 각국이 토양 F 기준을 운영하는데, 한국보다 낮은 국가로는 덴마크(20mg/kg)와 리투아니아·오스트리아(200mg/kg) 등이 있다. 토양 F 기준은 농작물 섭취, 지하수 섭취, 토양 섭취 등 인체 노출 경로 범위 포함 여부에 따라 큰 폭의 차이가 존재했다.

국내 지질 특성상 자연기원 불소 오염토양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현재 우리나라는 생활지역과 농업지역 등 엄격히 관리돼야 할 할 1지역 토양의 불소 평균 배경농도는 229.6mg/kg으로 오염기준 400mg/kg 보다 월등히 낮은 값이므로, 합리적인 불소 기준 설정에 국내 불소 배경농도를 연계하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다.

토양 내 자연 기원 불소농도가 높은 인디아, 중국, 파키스탄, 에디오피아 등 국가를 중심으로 불소 오염 토양으로 인한 지하수·농작물 오염 및 인체 위해성 평가에 관한 연구가 급증하고 있다. 또한 전 함량 F보다 용출되는 F 비율 강조, 최근 용출 F의 지하수 및 농작물 오염으로 인한 높은 인체 위해도 보고 연구 결과와 토양 불소의 농작물 농축을 나타내는 생물농축계수의 수치가 알려진 것보다 높은 것으로 다수 보고되고 있다.

만약 불소 토양오염 기준치를 올린다면 기존 기준치와 상향된 기준치 사이의 정화되지 않은 불소 오염 토양은 전국 어디에나 뿌려질 수 있다. 건설 전 땅속에 존재하던 불소 오염토양은 굴착으로 파쇄·미세화돼 오염과는 전혀 상관없는 타 지역의 주거지 건설현장, 농경지 복토, 운동장, 공원 조성 등에 사용된다면 국민의 불소 노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환경부도 미국의 환경보호청 같이 독립성과 독자성을 확보해 규제 완화라는 미명 아래 일부 이익 집단에 특혜를 줘 대다수의 국민이 피해를 보는 어리석은 행위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환경부가 법을 제정하는 주요 목적은 환경오염과 환경훼손을 예방하고 환경을 적정하고 지속가능하게 관리·보전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함이다. 따라서 이에 걸맞게 독립성과 독자성을 갖춘 환경부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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