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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부전 약 200정에 13만원"…횡재한 줄 알았더니 '직구 먹튀'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1월 A(34)씨는 해외 직구(직접 구매) 사이트에서 발기부전 치료제 비달리스타(시알리스 복제약) 200정을 13만원에 주문했다. 국내에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 살 경우보다 5분의 1 이하 헐값이어서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약이 오지 않았다. 업체에 문의하니 “곧 배송이 시작될 것”이란 답변만 반복했다. 수상하게 여긴 A씨가 수소문했더니 열흘 만에 같은 피해를 본 사람이 100명 넘게 모였다. A씨는 “8년간 해외 직구로 약을 사 왔다”며 “할인율이 높은 업체여서 선택했는데 사기를 당했다”고 말했다. A씨는 다른 피해자들과 업체 측을 경찰에 고소할 예정이다.

최근 A씨처럼 해외 직구로 의약품을 샀다가 물건을 받지 못하는 이른바 ‘해외 직구 먹튀 사기’ 피해자가 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온라인에서 탈모 치료제, 성기능 향상 의약품 등을 해외 직구로 판다는 사이트가 우후죽순으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국제거래 소비자포털에 등록된 해외 직구 사기 의심 사이트 수도 지난 2020년 249개에서 지난해 325개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단속한 결과, 온라인에서 의약품을 판매·유통하는 내용의 게시물이 1만 8331건에 달했다.

실제 30일 구글을 통해 의약품 구매로 검색한 결과 단번에 직구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었다. 업체 상당수는 의약품을 많이 구매할수록 할인율을 높이거나, 새 가입자가 추천인을 적으면 양쪽 모두에 포인트를 제공하는 방식 등으로 사이트 가입 및 구매를 유도하고 있었다.

문제는 의약품을 식약처의 수입 허가를 받지 않고 국내에 들여오는 것 자체가 약사법을 위반한 범죄 행위라는 점이다. 게다가 불법 직구 사이트들이 주로 판매하는 탈모·발기부전 치료제 등은 국내에선 전문 의약품이어서 의사 처방 없이 팔 수 없게 돼 있다.

한 포털사이트에서 의약품 해외 직구를 검색하니 나온 홈페이지의 광고. 사진 홈페이지 캡쳐

한 포털사이트에서 의약품 해외 직구를 검색하니 나온 홈페이지의 광고. 사진 홈페이지 캡쳐

의약품 직구 사기 피해를 보더라도 구제받기가 쉽지 않다. 사기 사이트가 주로 해외에 거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의약품을 불법 판매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하게 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수사가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직구 업체 IP가 해외에 있으면 국제 수사 협조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스테로이드·에페드린·에토미데이트 등 성분이 포함된 전문 의약품의 경우엔 구매자도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약사법 98조)

많은 의약품 해외 직구 업체가 추천인 제도로 새 가입자를 유도한다. 사진 홈페이지 캡처

많은 의약품 해외 직구 업체가 추천인 제도로 새 가입자를 유도한다. 사진 홈페이지 캡처

최근 해외 의약품 직구 업체가 증가한 건 그만큼 국내 수요가 급증하면서다. 국내에 없는 무허가 의약품을 구하거나 국내에서 팔더라도 헐값에 대량 구매하기 위해 직구 사이트를 찾는다. 2022년 인천본부세관이 국내에선 허가되지 않은 임신중절약을 중국에서 5만7000여정을 밀반입해 판매한 일당 6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허혈성 뇌경색, 고령자 인지장애, 기면증 등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일부 약품은 ‘스마트 드럭(머리가 좋아지는 약)’으로 오남용되기도 한다. 해당 약을 해외 직구로 산 경험이 있는 C씨는 “이 의약품은 치매 판정받은 환자가 아니면 처방받을 수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탈모약과 성기능 개선 의약품은 비용 절감 목적의 해외 직구가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한 탈모약의 경우 약국에서 구매할 경우 10정에 1만6500원이지만, 해외 직구로 살 경우 2600원에 살 수 있었다. 바르는 탈모약을 해외 직구한 이모(36)씨는 “처방을 받으려면 병원 대기가 길고 가격도 비싸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직구 업체들이 관세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펼치는 꼼수도 다양해지고 있다. 사진 한국소비자원 제공

해외 직구 업체들이 관세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펼치는 꼼수도 다양해지고 있다. 사진 한국소비자원 제공

해외 직구 업체가 관세 당국의 눈을 피하는 수법도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포장 용기를 바꾸는 일명 ‘통 갈이’를 하거나, 스테로이드·에페드린·에토미데이트 등 통관 금지 성분을 제품명에서 고의로 누락시키기도 한다. 미화 150달러(약 20만원) 이하의 제품은 수입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을 악용해 실제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신고하기도 한다.

의약품 해외 불법 직구를 막기 위해선 구매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판매자에 비해 처벌이 가볍고, 처벌 가능한 약 성분이 제한돼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대륜 최현덕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구매자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약사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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