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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농민 "파리 무기한 봉쇄" , 정부와 강대강 대치…성난 농심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럽연합(EU) 최대 농업국인 프랑스에서 농민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뒤늦게 대책을 내놓으며 수습에 나섰지만 성난 농심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농민들은 급기야 수도 파리 봉쇄를 예고했고, 정부는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저지에 나서며 농민과 정부간 대립이 강대강 대치로 치닫는 형국이다.

프랑스 농민들이 트렉터로 고속도로를 봉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프랑스 농민들이 트렉터로 고속도로를 봉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농민, 수도 봉쇄…정부, 대규모 병력 투입 

28일(현지시간) 프랑스 공영 국제방송 프랑스24와 프랑스국제라디오방송(RFI)·자코뱅매거진 등에 따르면, 프랑스 전국농민연맹(FNSEA)은 오는 29일 오후 2시(한국 29일 오후 10시)부터 파리로 향하는 모든 간선도로를 무기한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남서부 로트에가론 지역 농민들은 이미 트랙터를 몰고 파리로 출발했다. 이들은 파리 근교 렁지스에 있는 도매 시장을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27일(현지시간) 프랑스 농민들이 벨기에 몽생기베르의 왈룬 로터리에서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프랑스 농민들이 벨기에 몽생기베르의 왈룬 로터리에서 바리케이트를 설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피에릭 호렐 청년농민노조(Young Farm Union) 대표는 TV 인터뷰를 통해 “파리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란 사실을 총리가 잊어버린 모양”이라며 “파리 시민이 살기 위해선 농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겠다”고 밝혔다.

이에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장관은 이날 오후 긴급회의를 열고 대책을 마련했다. 다르마냉 장관은 성명을 통해 파리 외곽에 경찰력 1만5000명을 배치했다고 밝히면서 “대규모 병력으로 수도와 그 주변 지역에 신선 식품 대부분을 공급하는 렁지스 도매시장과 파리 공항의 봉쇄를 저지하고, 농민 행렬이 파리로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겠다”고 했다.  

또한 헬리콥터를 동원해 시위대의 트랙터 움직임을 실시간 모니터링 할 것이고 덧붙였다. 파리 경찰은 렁기스 도매시장이 자리한 파리 외곽에 이미 장갑차와 경찰차가 배치된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했다.  

유통업체 폭리, EU·정부 일방 정책에 분노

프랑스의 농민 시위는 지난 18일 남서부 툴루즈에서 시작해, 불과 일주일 만에 80개 지역으로 번졌다. 7만 명 이상의 농민들이 수천 대의 트렉터를 몰고나와 프랑스 전역의 고속도로와 국도를 봉쇄하고 톨게이트를 파괴했다.  

이들은 악취 나는 거름더미를 시청·경찰서·은행 등 관공서 문 앞에 투척하는가 하면, 대형 쇼핑몰에 들어가 쇼핑 카트를 가득 채운 뒤 돈은 내지 않고 카트를 밖으로 밀어버리는 등의 집단 행동을 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프랑스 농민들이 한 수퍼마켓에서 카트에 과일과 야채를 채워 밖에 버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프랑스 농민들이 한 수퍼마켓에서 카트에 과일과 야채를 채워 밖에 버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좌파 성향의 매체 자코뱅매거진은 농민들이 이처럼 분노한 것은 ▶고물가 국면에서 원가 인하를 농가에만 전가하는 대형 유통업체의 불합리한 관행 ▶자국 농산물에만 과도하게 규제하면서 질 낮은 수입산 농산물을 대량으로 값싸게 들여오는 정부 정책 ▶농업 현실을 무시한 EU의 과도한 환경주의와 탁상공론 등에 수년간 반감이 적체된 결과라고 전했다.

매체는 “지난 2~3년간 살인적인 인플레로 식료품 가격이 폭등했지만, 프랑스 농민들은 매일 쉬지 않고 일해도 먹고 살기조차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고 전했다. 식료품 가격 급등에 따른 이윤은 대형 유통업체가 독식했고, 농민에게는 오히려 원가 인하 부담이 전가돼 이중고를 겪게 됐단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2분기 식품 유통산업의 총 마진은 2021년말 대비 28~48% 증가했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고속도로를 막고 있는 프랑스 농민들의 트랙터들. EPA=연합뉴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고속도로를 막고 있는 프랑스 농민들의 트랙터들. EPA=연합뉴스

EU의 관료주의와 탁상 행정도 농민 분노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EU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하는 그린딜을 채택했는데, 이에 따라 농민들은 농약 사용을 줄이고, 작물 재배 과정에서 기후 및 생물 다양성을 고려해야 하는 새로운 부담을 떠안게 됐다. 총 90억 유로(약 13조원) 지원금이 책정됐지만, 신청에 필요한 서류 등이 복잡해 사실상 기업화된 일부 대형 농장만 혜택을 독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입 농산물과의 이중잣대도 문제삼고 있다. EU는 남미 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와 비관세 수입 조치를 마무리 중인데, 남미의 농산물에는 프랑스에선 철저히 금지된 농약과 성장 촉진 호르몬 등이 51가지 이상 허용됐다.

여기에 프랑스 정부가 지난 1월 농업용 경유의 가격 인상안을 발표하자 그간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고 프랑스 매체는 전했다.  

27일(현지시간) 프랑스 살롱드프로방스의 슈퍼마켓 입구에 농부들이 거름을 투척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프랑스 살롱드프로방스의 슈퍼마켓 입구에 농부들이 거름을 투척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佛 국민 89% 농민 시위 지지 

프랑스 일간지 피가로에 따르면 농민 시위에 대해 프랑스 국민 89%가 지지를 표하고 있다. 자코뱅매거진은 지난 2018년 유류세 인상에 분노해 프랑스 전역에서 일어났던 ‘노란조끼 시위’에 대한 지지도보다 10%P 이상 높은 수치라고 전했다. 특히 프랑스 국민 94%는 ‘자국 농민들에게 요구되는 농작물 재배 기준을 수입 농산물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시위대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지난 26일 농가 지원책을 발표하며 농심 수습에 나섰다.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가 직접 남서부 오트가론의 한 축산농장을 찾아 ‘이갈림(EGAlim)법’ 적용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제정된 이갈림법은 식품 원자재 생산자, 식품기업, 유통업체 간 거래에서 농민이 생산 원가를 고려해 시장가를 직접 제안하도록 규정한 법이다. 정부는 이를 위반한 법인에 대해 최대 100만 유로(약 14억5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의 보복을 우려한 농민들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면서 해당 법안은 유명무실해졌다. 이날 아탈 총리는 “법을 지키지 않는 기업에 무거운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브리엘 아탈(가운데) 프랑스 총리가 프랑스의 한 농장을 방문해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가브리엘 아탈(가운데) 프랑스 총리가 프랑스의 한 농장을 방문해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농업용 경유 과세 계획도 철회했다. EU의 친환경 기준에 맞춰 올부터 2030년까지 농업용 경유에 점진적 과세를 시행할 계획이었지만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해 EU에 조건을 완화를 제안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농민 시위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르노 루소 FNSEA 회장은 TF1 뉴스 채널에 “우리는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면서 아탈 총리의 발표가 농민들의 분노를 진정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전했다. 루소 회장은 “정부는 더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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