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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非敢後也, 馬不進也(비감후야 마부진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노나라의 대부 맹지반(孟之反)은 전쟁에 나갔다가 적에게 밀려 패주(敗走)하는 상황에서도 맨 뒤에서 끝까지 적을 막으면서 후퇴했다. 그러다가 성문 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에야 말에 채찍을 가하며 “내가 적과 끝까지 용감하게 싸우느라 뒤처진 게 아니고, 말이 내달리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 뒤처져 싸우면서 퇴각하고서도 끝내 그 공을 자랑하지 않고, 말(馬) 탓으로 돌린 것이다. 공자는 맹지반의 그런 겸손을 높이 칭찬하였다.

敢:감히 감, 後:뒤 후, 進:나아갈 진. 감히 뒤에 선 게 아닙니다. 말이 나아가지 않았을 뿐입니다. 35X70㎝.

敢:감히 감, 後:뒤 후, 進:나아갈 진. 감히 뒤에 선 게 아닙니다. 말이 나아가지 않았을 뿐입니다. 35X70㎝.

세상에는 맹지반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일은 다른 사람이 다 하고, 공적과 이익은 엉뚱한 사람이 취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 후기 우리나라에 들어온 중국 상인들이, 길들인 곰을 데리고 곡예(曲藝)하여 돈을 버는 경우에 빗대어 발생한 속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도 ‘맹지반’ 같은 사람보다는 ‘왕서방’ 같은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일을 할 때는 뒷전에서 얼쩡거리기만 하다가 ‘사진을 찍을 때’는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고, 아예 사진만 찍고 가버리는 꼴불견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얼렁뚱땅 공(功)을 챙기는 경우를 청산하지 않는 한, ‘공정’을 외치는 목소리는 공허할 뿐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