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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스타트업이여, 세계로 진출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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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5호 31면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

미·중 패권 전쟁이 표면화되기 직전인 2018년 11월 중국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와 역사 도시 낙양을 방문했다. 하남성은 중국 역사의 중심인 중원을 대표하는 지역이다. 인구가 1억 명이나 된다. 낙양 시내의 ‘왕성대도’라는 길 이름이 이곳이 여러 왕조의 수도였다는 것을 실감나게 했다. 중국의 고속철도가 동서와 남북으로 만나는 교통의 요지 정주는 제조업이 발달한 곳이다. 하지만 경제에서 중공업과 광업의 비중이 커서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상대적으로 낮은 낙후된 지역이다.

세상 바꾸는 중심은 실리콘밸리
팬데믹 이후 글로벌 자본 모여
한국인들 현지서 활발히 창업
커뮤니티 만들어 노하우 공유도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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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의 유네스코 유산인 용문 석굴을 방문했을 때, 당나라 시대 신라 스님이 만든 석굴 신라상감(新羅像龕)과 마주쳤다. 그 옛날 우리 민족이 중원의 한가운데까지 진출해 상당한 문화·경제적 활동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유산이다.

젠 AI(인공지능)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2024년 이후 세계를 바꾸는 새로운 중원은 어디일까? 당연히 실리콘밸리다.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는 코리안들의 무대였다. 이 행사가 막을 내린 지난 12일 샌프란시스코 남쪽의 실리콘밸리에는 1000명 이상의 스타트업 코리안들이 모였다. 프라이머사제 이기하 대표 등이 2018년 한국의 국제전화 코드 82를 붙여 시작한 ‘82 스타트업 서밋’ 커뮤니티가 팬데믹 이후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 82는 실리콘밸리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 ‘엘 까미노 레알’의 번호이기도 하다.

미국 내 현지 창업자와 벤처 캐피털(VC)도 많았지만 미국 진출에 관심이 있는 한국의 스타트업과 VC들도 많이 참석했다. AI 시대에 미래를 고민하는 중견 기업, 대기업의 임직원들도 CES 관람 후 이곳으로 왔다. 필자와 동행한 서울대 교수들은 한국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코리안 세상을 체험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스타트업 CEO들과 투자자들은 경험을 공유했다. 소프트뱅크가 17억 달러를 투자한 야놀자의 이수진 대표가 데카콘으로 급성장한 스타트업이 겪은 내부의 문제와 회사의 혁신 경험을 소개했다. AI 기반 고성능 광고 플랫폼 기술로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해 유니콘 반열에 오른 몰로코의 안익진 대표는 딥 테크 스타트업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2013년 창업하기 전 유튜브의 빠른 정보 흐름에 맞는 광고 기술에 대해 고민하던 구글 엔지니어였다. 타이거 캐피털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이 회사 가치는 20억 달러를 넘어섰다. 두 회사 모두 나스닥 상장이 기대되는 자랑스러운 코리안 스타트업이다.

뉴로 사이언스와 데이터 사이언스를 접목한 연구로 창업한 스탠퍼드대 이진형 교수는 실리콘밸리에서 대학 연구와 딥 테크 창업이 내는 시너지에 대해 소개했다. 서울대 졸업 후 스탠퍼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이 교수는 서울대에서 필자의 지도 학생이었다. 2000년대 초반 실리콘밸리에서 서울대 교수로 인메모리 데이터베이스 기술 창업을 한 필자의 대를 잇는 창업이다. 필자는 이 스타트업을 글로벌 ERP 기업 SAP와 인수합병(M&A)을 한 뒤 SAP의 새로운 플랫폼인 HANA의 연구개발과 시장 개척을 주도하면서 글로벌 혁신 생태계의 작동 원리를 습득했다. 스탠퍼드 대학로에는 이 혁신 정신을 담은 HANA 하우스가 창업자들과 투자자들을 위한 만남의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아시아 국가 중 중국과 인도를 제외하고 이렇게 활발하게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성공한 나라가 없다. 좁은 한국을 벗어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이 코리안의 도전 정신을 확산하고 증폭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할 때이다.

창업자 외에도 실리콘 밸리의 VC들과 이곳에 진출한 한국계 VC들, 또 이 VC에 투자한 유한 파트너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경험을 공유했다. 특히 버텍스 US 벤처의 이인식 대표는 한국의 창업자들이 실리콘밸리에 진출할 때 갖추어야 할 글로벌 전략과 버려야 할 한국적 마인드셋에 대해 조언했다. 미국 이민자인 그는 20대 초반이던 1990년대 초 인터넷 시대가 열리자 최초의 자바 서버 기술 기업을 창업한 후 이 회사를 인수한 넷스케이프의 안드레센, 호로비츠 등과 두 번째 창업을 한 연쇄 창업자다. 안드레센과 호로비츠는 a16z를 창업해 실리콘밸리의 메이저 VC로 키운 창업자들이다. 20여 년 전 필자의 실리콘밸리 창업을 돕기도 한 이인식 대표는 페이스북 엔젤 투자를 하는 등 딥 테크 투자를 활발하게 해오고 있다.

현재 실리콘 밸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젠 AI도 ‘82 스타트업 서밋’에서 다루어졌다. 오픈 AI의 정형원 박사, 구글의 이홍래 박사, 한국의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의 김성훈 대표와 필자가 젠 AI의 미래에 관해 토론했다. 일론 머스크의 AI 스타트업 X.AI에 투자할 것인가는 질문에 대부분의 토론자들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X.AI가 테슬라, 스페이스 X 등 머스크의 영향력 하에 있는 기업과 함께 만들어갈 엔터프라이즈 AI 시장의 가능성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무대에서 열린 혁신을 이끌고 있는 코리안들은 한국의 성문법 체계가 가지고 있는 각종 규제로부터 자유롭다. 또한 팬데믹 이후 실리콘밸리로 몰려든 글로벌 혁신 자본을 활용해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다. 한국의 스타트업들이여, 이제 세계로 나아가라!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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