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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부활한 트럼피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75호 30면

최익재 국제선임기자

최익재 국제선임기자

지난 15일부터 닷새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각국 지도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인물은 단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가 오는 11월 5일 치러지는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재도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CNN 등 외신들의 설명이다. 지난 2017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도 국제사회는 크게 술렁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 하에 미국이 그동안 추구해온 외교적 유산이 한꺼번에 부정당하는 상황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집권 당시 ‘미국 우선주의’를 근간으로 한 ‘고립주의’를 내세워 국제 이슈에 간섭하지 않는 외교정책을 펼쳤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지금도 그는 여전히 고립주의를 앞세우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물리친다면 국제사회는 또다시 트럼프가 제시하는 새로운 룰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트럼프 집권시 ‘확장억제’ 유효할까
국제정세 변화 민감하게 대응해야

그 조짐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외신들은 트럼프의 부활을 가장 꺼려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핀란드와 호주를 꼽고 있다. 러시아와 1340㎞나 되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핀란드는 74년간 줄곧 중립국 지위를 고수하다가 지난해 5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3개월 만이었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와 군사적 대립이라는 리스크를 감내하면서까지 내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 배경에는 물론 나토의 핵심인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신뢰가 깔려있다. 하지만 나토에서 탈퇴하겠다고 떠벌리는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인해 그 신뢰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나토 가입에 역할을 했던 정치인들은 국내 정치에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미국과 함께 중국의 팽창주의에 맞선 호주도 낭패를 볼 상황에 빠졌다. 호주는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와 ‘오커스(AUKUS)’ 등에 가입해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해왔다. 이로 인해 양국은 호주산 석탄 수입이 금지되는 등 무역 전쟁까지 겪었다. 트럼프가 재집권해 미·중 관계에 변화가 생기고, 이에 따른 호주의 역할이 모호해질 경우 호주는 지붕만 쳐다보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그 어떤 나라보다 트럼프의 재선을 가장 두려워하는 국가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다. 트럼프는 이미 여러 차례 “더 이상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않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는 실제 지난 2018년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 경험이 있다.

이처럼 국제정세는 언제든 예기치 않게 돌변할 수 있다. 이런 환경 변화에 가장 적게 영향을 받는 나라일수록 국가 이익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까지 무자비할 정도로 과감하게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는 이스라엘이 그 사례가 될 수도 있다. 이번 가자전쟁에서 보듯 최강 미국도 이스라엘의 고집 앞엔 속수무책이다. 실제 10년 넘게 장기집권하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는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든 상관없이 철저히 자국 이익만을 강조하는 대외정책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노련한 정세 판단과 함께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들어서도 북한은 미사일 발사 등 다양한 군사적 도발로 한반도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간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한 ‘확장억제’를 강력한 대북 억지 수단으로 강조해왔다. 백악관 주인이 바뀐다면, 바이든 시대에 통했던 룰이 그대로 트럼프에게 전수될 수 있을까. 혹시 모를 변화에 대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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