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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층 바뀔 때마다 새 음식…중국요리 백화점 타이베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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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5호 26면

[왕사부의 중식만담] 대만 요리

1984년 김포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지는 대만 타이베이. (인천국제공항은 이보다 한참 뒤인 2001년 3월 29일에 문을 열었다) 플라자호텔 중식당 도원 주방에서 일할 때였다. 우수사원에 뽑혀 해외연수 기회를 얻은 덕이었다. 1989년부터 해외여행을 자유로이 하게 됐으니 여권 만들기 까다로운 시절이었다. 한·중 수교(1992년) 전이라 중국 대륙에는 가지 못하던 때였고 한국과 대만 관계는 더없이 좋았다.

사천요리로 명성 높은 앰배서더호텔 국빈대반점 주방을 견학했다. 장징궈 총통이 드나들고, 리덩후이 부총통은 어향가자(魚香茄子·위샹체쯔·어향소스가지볶음)를 즐겼다. 시냇물이 바다를 만난 느낌이었다. 꿀 넣은 대만햄연잎찜인 부귀우방(富貴雙方), 닭피와 돼지막창을 쓰는 오경장왕(五更腸旺), 바닷가재로 만드는 사미용하(四味龍蝦)처럼 처음 보는 요리도 수두룩했다. 이제 와 생각하니 당시는 대만 요리가 본토와 다른 나름의 정체성을 만든 때였다. 대만 역사는 곡절이 많다. 음식에는 복잡하고 녹록지 않은 역사가 녹아있다.

쓰촨요리 마의상수(螞蟻上樹). 개미가 나무를 올라가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쓰촨요리점은 타이난에 있는 위위안촨차이찬팅( 園川菜餐廳)으로 1950년 창업했다. 박종근 기자

쓰촨요리 마의상수(螞蟻上樹). 개미가 나무를 올라가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쓰촨요리점은 타이난에 있는 위위안촨차이찬팅( 園川菜餐廳)으로 1950년 창업했다. 박종근 기자

지난해 12월 22일자 중앙일보는 눈길 끄는 기사를 실었다. 김기협 역사학자가 썼다. 다양한 어족(語族) 중에 오스트로네시아어족(남양어족)은 꽤 특이하다는 내용이다. 태평양 동쪽 이스터섬에서 인도양 서쪽 마다가스카르섬까지, 그러니까 지구 둘레 절반이 넘는 바다 지역에 퍼져있는 남양인들이 쓰는 말인데 놀랍게도, 학계는 남양어의 고향을 대만으로 본다. 대만에서 남양어 1차 분화가 일어난 뒤 그중 하나가 해양으로 퍼져나갔다는 시각이다. 남양어는 중국어와 전혀 다른 갈래다.

대만은 한국의 영남지역보다 조금 큰데  40여개 소수민족이 있다. 한족이 남하하면서 본토 남부에 살던 부족들이 섬으로 건너왔을 테다. 근대 이전만 해도 대만 땅 주인은 이들이었다. 지금도 고산지대에는 카발란(噶瑪蘭)·아타얄(泰雅)·트루쿠(太魯閣)·사이시얏(賽夏)·사키자야((撒奇萊雅)·아미(阿美)·초우(鄒)·푸유마(卑南)·루카이(魯凱)·파이완(排灣)·흘라알루아((拉阿魯哇)같은 부족들이 산다. 평지에 사는 핑푸족(平埔族)은 대개 한족에 스며들었다. 대만이 공식 인정하는 민족은 16개다. 중국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 56개 민족 중 하나인 고산족에 포함하고 있다.

대만은 근대까지 변방 취급을 받아 왜구의 소굴이 되기도 했다.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포르투갈·네덜란드·스페인이 들어왔다. 1661년 정성공(鄭成功)은 청나라를 배격하고 명나라 부흥을 내세워 남서부에 동녕국을 세웠다. 청나라 옹정제 때인 1782년에 푸젠성 일부가 됐다. 대륙인 확장사는 원주민 수난사이기도 하다.

청일전쟁이 대만 운명을 바꿔놓았다. 일본은 1895년부터 일제가 패망한 1945년까지 꼭 50년 동안 대만을 지배한다. 식민지배 기간 물자와 인력 교류가 활발해지며 음식문화도 피어났다. 1923년 타이베이에 간 일본 황태자가 다다오청(大稻埕) 거리에 있는 장산러우(江山樓)에 들렀다. 한꺼번에 손님 800명을 맞을 수 있는 초대형 요릿집이었다. 1927년 문을 연 펑라이거(蓬萊閣)는 쑨원의 전속요리사를 고용해 광둥요리를 냈다. 이 시기 대만요릿집은 일본 술과 커피를 내기도 했다.

일제 패망은 대륙 요리가 대만에 집결하는 계기가 됐다. 종전 뒤 국민당 정부가 대만을 접수하고, 1948년에는 천청(陳誠)이 군대를 이끌고 오며 후난요리가 퍼졌다. 1949년에는 마오쩌둥에 밀린 장제스가 타이베이로 근거지를 옮겼다. 이때 함께 온 군인·관리·부자들을 따라 그들 고향 요리사들도 왔다. 장쑤·저장·후난 출신이 많았다. 헝양루(衡陽路)에 이들 지역 요리를 내는 가게들이 줄줄이 생겼다. 한국전쟁 때 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서울 오장동에 모이며 냉면 거리가 생긴 것처럼. 당시 단위별 군부대 병사들은 대개 고향이 같았다. 이들이 모여 사는 쥐안춘(眷村)에서 해먹던 지역 음식들이 주변으로 점차 퍼져나갔다.

대만에는 2차대전 뒤에 생긴 요리가 적잖다. 쭤쭝탕지(左宗棠鷄)는 달고 매운 양념을 버무려 튀긴 닭인데, 쭤쭝탕은 청나라 마지막 명장으로 대만 지방 장관을 지냈다. 냉전 시절인 1960~70년대는 차이푸단(菜脯蛋·생선과 말린 무를 넣은 달걀말이), 싼베이지(三杯鷄·소홍주 설탕 등을 넣어 조린 닭)같은 소박한 음식을 파는 가게가 많았다. 큼직한 소고기가 올라가는 뉴러우몐(牛肉麵)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발상지가 가오슝 공군기지 인근의 쥐안춘이라는 설도 있으나 글쎄다.

국빈을 접대하는 영빈관 위안산다판뎬(圓山大飯店) 요리를 빼놓을 수 없다. 호텔 로비에 전시한 벤츠는 실제 경영자이던 장제스 부인 쑹메이링이 타던 차다. 일제 때 신사가 있던 자리에 지었다. 1952년에 문을 열고 1973년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증축했다. 초대 조리장은 장제스 가족 요리사 청밍차이로 장쑤·저장 요리 전문가다. 60년대 유행한 촨양요리가 이 호텔에서 출발했다. 주방에 쓰촨·화이양 출신 요리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소룡포(小籠包·샤오룽바오)를 파는 딘타이펑(鼎泰豊)은 관광객 필수 코스가 되다시피 했다. 루러우판(滷肉飯·돼지고기 덮밥)은 서민들의 소울 푸드다. 익힌 삼겹살을 간장·팔각·맛술·설탕·오향가루 등을 넣고 졸여 밥에 비벼 먹는다.

향장(香腸·샹창·대만식 소시지), 쏸라탕(酸辣湯·해산물이 들어간 시고 매콤한 수프), 취두부(臭豆腐·처우더우푸·발효두부튀김), 빙수, 봉리소(鳳梨酥·펑리수·파인애플 케이크), 버블티(珍珠奶茶·타피오카를 넣은 홍차) 등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원주민, 본성인, 유럽인, 일본인, 중국 동서남북 사람들 음식이 섞이며 발전해 오늘의 대만요리가 됐다. 대만, 그중에서도 타이베이를 중국요리 백화점이라고 하는 이유다.

※정리: 안충기 기자

왕육성 중식당 ‘진진’ 셰프. 화교 2세로 50년 업력을 가진 중식 백전노장. 인생 1막을 마치고 소일 삼아 낸 서울 서교동의 작은 중식당 ‘진진’이 2016년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으며 인생 2막이 다시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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