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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하자마자 해외 간다…앨범 1억장 시대 이끈 '남돌' 전략

중앙일보

입력

데뷔 9년차 그룹 NCT127은 강원 평창올림픽시장에서 행인이 알아보자 깜짝 놀라며 감동했다. 사진 NCT127 유튜브

데뷔 9년차 그룹 NCT127은 강원 평창올림픽시장에서 행인이 알아보자 깜짝 놀라며 감동했다. 사진 NCT127 유튜브

1억 1600만 장.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의 누적 앨범 판매량(써클차트 톱400 기준)이다. 2022년 판매량의 144%에 해당하는 수치로, 역대 최고 연간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 놀라운 성과의 8할은 보이그룹이 해냈다. 세븐틴은 지난 1년 동안 1600만장 이상을 팔았고, ‘2023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톱 K팝 앨범상을 받은 스트레이키즈는 단일앨범 ‘펜타 밀리언셀러’(500만장)라는 기록을 세웠다. 써클차트는 “100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남자 가수는 17팀이다. 2022년 대비 여자 가수 판매량은 17.9% 성장에 그친 반면, 남자 가수 판매량은 75.6% 성장했다”고 밝혔다.

'2023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정규 3집 '★★★★★(5-STAR)'(파이브스타)로 톱 K팝 앨범(Top K-Pop Album) 부문을 수상한 스트레이 키즈. 사진 빌보드

'2023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정규 3집 '★★★★★(5-STAR)'(파이브스타)로 톱 K팝 앨범(Top K-Pop Album) 부문을 수상한 스트레이 키즈. 사진 빌보드

그런데 낯설다. 음원차트를 휩쓴 걸그룹 뉴진스·아이브·에스파는 알아도, 수백만 장의 앨범을 판 보이그룹은 부른 노래 제목 하나를 대기가 어렵다.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지 않다면, “그룹 이름조차 잘 모른다”는 것이 보통의 반응이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걸그룹이 점령한 음원차트

보이그룹을 잘 모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대중성 지표인 음원차트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써클차트의 연말 결산 자료(2023년 1월 1일~12월 23일 집계)를 살펴보면 뉴진스, 아이브, (여자)아이들 등은 대중적인 곡으로 음원차트를 수놓았다.

‘디토’로 차트 1위한 뉴진스는 ‘하입보이’(2위), ‘오엠지’(4위), ‘어텐션’(8위)까지 4곡을 10위권에 올렸다. 아이브는 ‘아이엠’(3위), ‘키치’(6위), ‘애프터라이크’(10위) 등 3개 곡으로 추격했다. 순위를 넓히면 르세라핌의 ‘언포기븐’(11위)과 에스파의 ‘스파이시’(12위) 등이 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반면 보이그룹은 음원차트에서 사라졌다. 연간 앨범 판매량 1위에 오른 세븐틴은 연간 음원 차트 톱10에 들지 못했다. 20위권으로 범위를 넓혀도 세븐틴 유닛 부석순의 ‘파이팅해야지’(19위)만 간신히 발을 걸쳤다. 아이튠즈, 스포티파이를 합산한 글로벌 차트에서도 보이그룹 음원은 순위권 내 실종이다. 방탄소년단의 멤버 정국, 지민만이 솔로로 글로벌 톱10에 올랐다.

아이돌 역사에서 걸그룹이 음원에 강세를 보여온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보이그룹 노래가 이렇게까지 소외된 해는 없었다. 2022년엔 빅뱅의 ‘봄여름가을겨울’(2022년 연간 음원차트 7위)이 있었고, 2021년엔 방탄소년단 ‘다이너마이트’·‘버터’가 톱10에 들었다. 2020년 1위곡은 블락비 출신 지코의 ‘아무노래’였다. H.O.T., god, 동방신기 등 보이그룹들은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돌로 군림했다.

윤광은 문화평론가는 칼럼에서 “‘걸그룹=대중성, 보이그룹=팬덤’의 공식은 몇 년전부터 일정 부분 현실 적합성을 잃었다. 이젠 걸그룹도 팬덤이 크고 예전만큼 대중성이 강하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이그룹은 걸그룹보다 팬덤이 크고, 팬덤 말고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고 분석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팬덤 안에서 진화한 보이그룹

전문가들은 ‘남돌(남자 아이돌)’들이 강력한 팬덤을 바탕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내수시장에선 히트곡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지만, 글로벌에선 코어(핵심) 팬만으로도 폭넓은 활동이 가능해진다. 강렬한 몰입과 소비를 보이는 ‘헤비 팬덤’이 대규모로 형성되면 대중성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대중적인 히트곡없이 글로벌 팬덤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가수가 된 방탄소년단이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방탄소년단은 2015년 ‘아이 니드 유’(I Need You)로 공중파 첫 1위를 거머쥐었고 2016년 ‘피땀눈물’을 통해 미국 등 글로벌로의 팬덤 확장을 실감했다. 이후 ‘DNA’(2017), ‘페이크러브’(2018), ‘작은 것들을 위한 시’(2019), ‘다이너마이트’(2020) 등 여러 히트곡을 만들었다.

방탄소년단은 2016년 발매한 정규 2집 '윙스'(WINGS)를 기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그해 앨범은 최고판매량(75만장, 이하 써클차트 기준)을 기록했고 타이틀곡 '피 땀 눈물'은 연간 음원 차트 91위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은 2016년 발매한 정규 2집 '윙스'(WINGS)를 기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그해 앨범은 최고판매량(75만장, 이하 써클차트 기준)을 기록했고 타이틀곡 '피 땀 눈물'은 연간 음원 차트 91위에 올랐다.

가요관계자는 “데뷔 1년도 안 되어 해외로 나가는 보이그룹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국내 팬덤보다 해외를 먼저 잡겠다는 시도다. K팝의 저변 확대로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보이그룹은 팬을 붙잡기 위해 차별화한 정체성을 강조한다. 그룹 서사를 관통하는 세계관을 심는 것도 정체성을 보여주는 노력 중 하나다. K팝 세계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초능력자’ 엑소를 비롯해 ‘무한한 가능성의 꿈을 공유하는’ NCT, ‘지구공동설’ 고스트나인, ‘별의 정기를 타고난’ 피원하모니, ‘뱀파이어 소년’ 엔하이픈 등 최근 데뷔한 그룹일수록 세계관은 더욱 복잡해진다.

엑소 멤버들 얼굴 위 왼쪽 동그라미에 각자의 초능력이 그림으로 표시돼 있다. 사진 엑소 ‘파워’ 뮤직비디오

엑소 멤버들 얼굴 위 왼쪽 동그라미에 각자의 초능력이 그림으로 표시돼 있다. 사진 엑소 ‘파워’ 뮤직비디오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보이그룹들의 콘셉트는 어려워지고 퍼포먼스도 강하다. 이런 음악들은 단적으로 보면 코어 팬층이나 K팝 팬들에게 소구력이 크다. 그렇지만 일반 대중, 특히 남성 팬에겐 어필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보이그룹의 생존 전략으론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됐다. 코어 팬만으로도 얼마든지 수익을 낼 수 있다. 대중성을 위해서 팬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팬의 취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짚었다.

대중성 확대 노력도

하이브 방시혁 의장은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라이트 팬덤도 즐길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진 tvN '유퀴즈'

하이브 방시혁 의장은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라이트 팬덤도 즐길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진 tvN '유퀴즈'

K팝이 팬덤의 노력으로 성장한 건 사실이나, 난해한 콘셉트와 장황한 세계관으론 해외 대중까지 공략하긴 어렵다. 업계는 K팝이 주류 장르로 인정받기 위해선 피프티피프티 ‘큐피드’처럼 노래로 주목받아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지난 연말 tvN ‘유퀴즈’에 출연해 “K팝을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확장성이 필요하다. 몰입도 높은 팬도 중요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소비하는 팬들도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2023년 이후 데뷔한 보이그룹들은 강렬한 비트를 걷어내고 ‘이지리스닝’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SM의 라이즈, 하이브의 보이넥스트도어는 세계관에 갇히지 않고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 김형국 SM 총괄 디렉터는 “라이즈 차별화의 기본은 음악”이라고 했다. 22일 데뷔한 ‘세븐틴 후배 그룹’ 투어스는 소년 시절의 순수함을 강조하고 나섰다. 투어스를 론칭한 하이브 레이블 플레디스는 “자신들만의 친근한 음악적 화법을 들려줄 예정”이라고 전했다.

라이즈(RIIZE)는 SM에서 NCT 이후 7년 만에 선보인 보이그룹이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라이즈(RIIZE)는 SM에서 NCT 이후 7년 만에 선보인 보이그룹이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플레디스에 따르면 22일 론칭한 신인 보이그룹 투어스(TWS)는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겠다'는 기획의도에서 출발했다. 사진 플레디스

플레디스에 따르면 22일 론칭한 신인 보이그룹 투어스(TWS)는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겠다'는 기획의도에서 출발했다. 사진 플레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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