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저녁엔 스터디 모임, 회의는 주말에…윗선 조이는 대기업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25일 오전 9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 대회의실에는 허태수 GS 회장과 GS계열사 사장, 신사업 담당 임원 등 7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이날 점심‧저녁을 샌드위치로 해결하며 10여 시간 동안 ‘열공’(열심히 공부)했다. GS칼텍스·GS에너지 등 계열사마다 개발 중인 신기술이나 신사업 현황과 함께 사례도 발표했다.

GS칼텍스는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석유화학제품의 대체 물질 개발 기술을 의약품에 접목해 ‘화이트 바이오’(친환경 자연 생산 기술) 산업을 개척 중인 사례를 발표했다. ‘기존 사업에 신기술을 접목해 혁신해야 한다’는 허 회장의 의지에 따른 시도다. 이날도 허 회장은 “불황과 저성장을 극복할 열쇠는 신기술”이라며 “GS의 사업 역량과 신기술을 결합하는 시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5일 허태수 GS 회장이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계열사 사장들과 '신사업 공유회'를 진행하고 있다. GS

25일 허태수 GS 회장이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계열사 사장들과 '신사업 공유회'를 진행하고 있다. GS

롯데그룹의 한 임원은 최근 저녁 식사 약속 대신 스터디(소규모 공부 모임)를 시작했다. 공과대학을 졸업한 직원이 최신 인공지능(AI) 기술 트렌드를 설명하고 토론한다고 한다. 이달 18일 신동빈 롯데 회장이 계열사 사장과 주요 임원 등 8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그룹의 미래를 위한 혁신 방안으로 AI를 강조한 영향이다. 이 임원은 “그룹의 모태는 유통이지만, 첨단 기술을 이해 못하면 당장 CEO 보고에도 들어가기 어려운 지경이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사장단 회의’가 달라졌다. 이전까지 총수가 그룹 계열사 사장들을 모아서 독려하고 당부를 전하는 자리였다면 최근엔 첨단 기술을 함께 공부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스터디 같은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기존 사업만으로 더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자 총수들이 직접 고삐를 죄고 나선 영향이다.

GS그룹 허 회장은 2020년 회장 취임 이후 사장단 회의를 별도로 열지 않았다. 계열사의 현황이나 사업계획 등은 해당 사장만 불러 보고 받았다. 그러던 허 회장이 사장들을 불러 모은 건 2022년 9월부터다. 이어 지난해 8월 ‘GS 신사업 공유회’라는 이름의 회의가 진행됐고 이날 5개월 만에 다시 열렸다. GS 관계자는 “1년에 2회 정기적으로 공유회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룹 안팎에선 허 회장이 계열사 간 유기적인 협업을 강조하기 위해 공유회 형식의 회의를 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도 산업바이오‧순환경제‧전기차(EV)충전을 비롯해 AI‧기후변화‧디지털 같은 신기술을 기존 사업에 접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SK그룹의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최고의사협의기구) 의장은 다음 달부터 격주 토요일마다‘전략글로벌 위원회 회의’를 연다. 그간 한 달에 한 번, 평일에 했던 사장단 회의를 토요일로 옮겨 회의 집중도를 높이기로 했다. 현재도 SK하이닉스 등 SK 주요 계열사 임원들은 토요일 오전에도 근무하는 편이다. SK 관계자는 “사장단 토요 회의는 20년만에 부활했는데, 윗선부터 긴장하고 일에 집중하라는 신호로 보여 그룹 전체의 업무 긴장도가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최 의장이 그룹 재정비를 위해 고삐를 죄는 것으로 풀이된다. SK는 지난달 정기인사에서 최창원 부회장이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맡고, ‘부회장 4인방’로 불리던 조대식‧박정호‧김준‧장동현 부회장이 한꺼번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최 의장이 직접 사장들과 자주 대면하며 분위기를 쇄신하고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지난 2일 계열사 사장 40여 명 오후 6시에 만나 AI 등 기술 산업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이 회장은 AI가 삼성의 주요 사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적극적인 대응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 대기업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위기감을 느낀 총수가 직접 사장들을 조이고 챙기겠다는 '현장 경영' '위기 경영'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