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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중대재해법 유예는 좌절…달빛철도는 일사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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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윤재옥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윤재옥 원내대표 등 참석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부터 중대재해법 확대로 영세 사업장 비상

여야 생색낸 달빛철도법은 재정 원칙 허물 위험

영세기업들이 간절히 요청했던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가 결국 무산됐다. 여야는 50인 미만 사업장(5~49인)에 대해 중대재해법 적용을 2년 늦추는 방안을 놓고 25일까지 막판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따라 예정대로 27일부터 중대재해법이 확대 적용되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전국적으로 총 83만7000곳이고, 종사자는 800만 명에 달한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장(식당·호프집·치킨집 등도 포함)에서 1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부상·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혹은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게 골자다. 안전을 강화하자는 명분이야 훌륭하지만 당장 영세기업은 이 법이 요구하는 기준을 맞추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다. 코로나 사태 이후 경기 침체로 허덕이는 영세기업들에 추가로 안전 전문인력을 채용하고 재해 예방 예산을 마련하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하소연이 현장에서 줄기차게 제기됐다.

이에 지난해 정기국회부터 여야가 중대재해법 유예를 논의했으나 합의에 실패하자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노동계의 표심을 의식해 중소 상공인들의 아우성을 외면한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이 2년이 다 돼가는데 아무 준비도 안 해놓고 무작정 유예해 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한다.

동네 골목상권의 줄폐업 사태를 막기 위한 민생 현안 처리는 이렇듯 합의가 지지부진하지만, 정치인들이 지역에서 생색낼 수 있는 SOC 사업은 일사천리다. 대표적인 게 그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달빛철도 특별법’이다. 이는 광주송정역과 서대구역을 연결하는 총연장 198.8㎞의 철도 건설사업인데, 예상 사업비가 8조7110억원(복선 기준)에 달한다. 국가재정법상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의 신규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실시해야 하나, 달빛철도는 여야 합작으로 특별법을 만들어 예타를 면제했다.

동서 지역 화합과 국토 균형발전이 명분이라고는 하나 세금이 8조원이나 들어가는 사업에 경제성 검증을 무시하는 건 국가 재정의 뿌리를 흔드는 처사다. 이제 달빛철도가 선례를 만들었으니 전국적으로 비슷한 예타 면제 요구가 쏟아질 것이다. 실제로 현재 국회엔 부산·울산·경남을 지나는 ‘동남권 순환광역철도’를 예타 없이 추진하자는 특별법이나, 비수도권 전체의 도시철도사업에 예타를 면제하자는 국가재정법 개정안 등이 발의된 상태다. 서울지하철 5호선의 김포 연장을 예타 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한 법안도 추진 중이다. 가위 ‘철도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민생 법안은 정쟁에 발목이 잡히고, 여야 나눠먹기의 선심성 법안은 번개처럼 처리되는 요지경 속에서 최악의 21대 국회가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