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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60% 유전자 샘플 냈다…첨단 기술에 '올인'하는 이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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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에 위치한 국영기업 M42 산하 G42 헬스케어의 연구실에서 한 연구원이 바이오 샘플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 M42 제공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에 위치한 국영기업 M42 산하 G42 헬스케어의 연구실에서 한 연구원이 바이오 샘플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 M42 제공

지난 10일(현지시간) 방문한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의 국영 의료 기술 기업 M42 산하 G42 헬스케어. 이곳 고위 관계자가 “개별 촬영은 금지된 곳”이라며 한 연구실로 한국 취재진을 안내했다.

연구실에 들어서니, 무균실 처럼 통유리로 둘로 나뉜 공간이 나왔다. ‘웅-.’하는 공기 청정기 소리와 함께 유리벽 안쪽에선 유전자 분석 장비 업체인 미국 일루미나의 최신식 ‘노바식6000’을 비롯한 26대의 첨단 장비가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UAE가 “전세계 최단 기간 내 형성된 최대 규모”라고 자랑하는 ‘에미라티(Emirati·UAE 시민) 게놈 프로그램’의 분석 현장이었다. 알바라 엘카니 M42 운영 부문 선임이사는 “이곳에서만 1주일에 4500개의 전장 유전체 분석(WSG)이 가능하다”면서 “전체 연구실에서 실시간으로 처리 가능한 데이터만 170PB (페타바이트)로, 최신형 아이폰 5만대 용량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각국 유전자 분석 기관에선 보통 한 달에 20건 정도의 WSG를 분석할 수 있다고 한다. G42 헬스케어는 DNA 염기서열분석(시퀀싱)을 인공지능(AI) 기술과 결합해 자국민에 대한 참조 유전체, 즉 유전자 지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UAE 국민을 위한 맞춤형 의료 제공은 물론 자국민에 특화한 백신을 생산하는 게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엘카니 이사는 “일례로 결혼을 앞둔 커플에게 이들의 자손이 갖게 될 유전 질환의 확률에 대해 알리고, 시험관 시술(IVF) 권유 등으로 질병을 사전에 차단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놀라운 점은 UAE 국민의 절반 이상이 자발적으로 이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2021년 1월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UAE 국민 약 105만명(2022년 기준)의 60%인 57만 명이 자신의 DNA 샘플을 스스로 제출했다.

유전자 지도 제작 분야에서 선두 주자인 영국의 ‘UK바이오뱅크’가 2006년부터 5년 간 50만명을 모집했고, 한국은 보건복지부 주도로 올해부터 2032년까지 100만명 모집을 목표로 이제 막 사업을 시작했는 점을 고려하면 ‘최단 기간, 최다 인원’을 모집한 셈이다.

이에 대해 아흐마드 알 아와디 공보 선임이사는 “전 세계에 이정도 샘플로 유전체 연구를 진행하는 곳은 없을 것”이라면서 “UAE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바탕이 됐다”라고 강조했다.

M42는 미화 1조 달러 이상의 국부 펀드 무바달라 펀드로 만들어졌다. 지상 2층의 4500㎡(약 1300평) 규모의 ‘오믹스 센터’에선 유전체 분석실을 비롯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염기서열 분석실, 제대혈 보관 및 연구실 등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이런 국가 주도의 적극적인 투자는 “첨단 기술이 곧 미래의 석유”라는 UAE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9~11일 아부다비 미디어 오피스의 초청으로 방문한 아부다비의 국영 기업 관계자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UAE는 1971년 12월 2일 아부다비·두바이 등 7개의 토후국이 연합해 탄생한 신생 국가다. 건국 50년도 안 됐지만, 세계 7~8위권의 막대한 석유와 가스 생산량을 바탕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22년 기준 5만 9006달러에 이른다.

그런 UAE는 정작 풍부한 오일 머니에 안주하지 않고 다음 먹거리를 찾는 데 국가 역량을 ‘올인’하고 있다. “석유는 언젠가 고갈한다”는 위기감을 지도층은 물론 국민도 공감하고 있어서다. 경제의 탈석유화를 모색하며 생성형 인공지능(AI) 개발, 자율주행차량 도입, 오믹스 등 첨단 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이런 국가 주도 투자의 중심지인 아부다비에는 각종 국영 기업과 1조 달러 이상 국부 펀드 본부, 첨단 연구소가 밀집해 있다. UAE의 경제(약 5894억 달러 규모)의 3분의 2는 아부다비에서 나오며, UAE 대통령은 아부다비 국왕(에미르)인 알 나흐얀 가문이 대대로 맡고 있다.

“자체 개발 생성형 AI 팰컨, 오픈AI GPT-4 필적”

지난해 11월 셰이크 칼리드 빈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자(앞줄 가운데)와 파이살 알 반나이 아부다비 첨단기술연구위원회(ATRC) 사무총장이 아부다비에서 AI 기업 ‘AI71’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아부다비 미디어 오피스 제공

지난해 11월 셰이크 칼리드 빈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자(앞줄 가운데)와 파이살 알 반나이 아부다비 첨단기술연구위원회(ATRC) 사무총장이 아부다비에서 AI 기업 ‘AI71’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아부다비 미디어 오피스 제공

아부다비 첨단기술연구위원회(ATRC)는 아부다비 집행이사회의 의장인 셰이크 칼리드 빈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자가 주도하는 국가의 첨단 기술 연구·개발 조직이다. ATRC는 기술혁신기구(TII), 벤처 원 등 산하 조직을 통해 AI 기술의 연구 개발과 상용화, 수익화를 시도하고 있다.

TII는 UAE의 거대 언어 모델(LLM) 생성형 AI ‘팰컨 시리즈’를 개발했다. TII는 2021년 설립된 이래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팰컨 7B, 팰컨 40B, 팰컨 180B를 순차적으로 공개했다. 가장 최근 출시한 팰컨 180B의 경우 AI의 성능을 비교하는 국제 플랫폼인 ‘허깅 페이스’에서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 오픈AI의 GPT-3와 메타의 라마-2보다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나왔다. 오픈AI의 최신 AI인 GPT-4와 맞먹는 성능으로 분석됐다.

팰컨 시리즈를 바탕으로 벤처 원 산하에 ‘AI71’이란 국영 기업을 설립해 의료·법률·교육 등에 특화된 AI 툴을 상용화하는 게 UAE의 야심찬 목표다. 의료 AI인 ‘라지71’는 의사가 환자의 의료 기록과 증상에 대해 기록하면 AI가 진단부터 처방까지 의사에게 견해를 제시하도록 개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ATRC 산하 10개의 연구팀 산하에 77개국 1000명으로 구성된 ‘다국적군’이 우주, 자율주행차량, 보건 등 100여가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전체 연구원 가운데 55%는 여성이란 점도 “성별, 국적에 관계 없이 뛰어난 인재를 모으라”는 UAE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결과다.

“정치 불안에도 아부다비는 장벽 없는 투자처”

UAE 아부다비의 투자 관문인 아부다비투자청(ADIO). 각국 기업들이 아부다비에 진출하는 관문이자 출구이기도 하다. 사진 ADIO 제공

UAE 아부다비의 투자 관문인 아부다비투자청(ADIO). 각국 기업들이 아부다비에 진출하는 관문이자 출구이기도 하다. 사진 ADIO 제공

UAE도 코로나19 확산으로 한때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20년 기준 5% 역성장을 했다. 거주자의 85~90%가 외국인인 특성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팬데믹 국면이 완화하기 시작한 2022년부터는 7.9%의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불안한 중동 정세 속에서도 UAE는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안정적인 투자처’로서 아부다비를 선호하는 외국계 기업들이 꾸준한 게 비결이라고 한다.

외국계 중견·대기업 투자 유치를 맡는 아부다비 투자진흥청(ADIO)은 UAE 부의 3분의 2가 몰려 있는 아부다비에서 각종 사업 허가와 같은 행정 업무부터 각종 민원 등 외국계 자본이 활동하는 ‘입구와 출구’를 지원한다. UAE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총 178곳이다.

아부다비 투자진흥청(ADIO)이 밀고 있는 대표적인 투자처는 UAE가 조성한 첨단 기술 집약체인 ‘사비(SAVI) 클러스터’다. ADIO는 중국의 자율주행차 ‘위라이드’ 등을 사비 클러스터 안에 입주시켜 자국의 자율주행 관련 스타트업, 기업들과 교류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ADIO는 서울ㆍ베이징 뿐 아니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도 지소를 두고 외국계 자본을 적극 끌어 들이고 있다. 9일 만난 ADIO의 마시모 팔치오니 최고 경쟁력 책임자(CCO)는 “우리는 정치와 무역을 분리해야 한다고 믿는다”면서 “최근 정치적 리스크가 국제적으로 증진되고 있는 가운데 아부다비가 의미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차세대 물결 AI, 소수가 통제해선 안 돼” 아부다비 첨단기술연구위원회 사무총장

ATRC의 파이살 알 반나이 사무총장.

ATRC의 파이살 알 반나이 사무총장.

UAE 첨단기술연구위원회(ATRC)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UAE가 세계 인공지능(AI)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있다. 지난 11일 UAE의 대표 방산 기업 EDGE 집무실에서 파이살 알 반나이 ATRC 사무총장 겸 EDGE 이사회 의장을 만났다. 그는 “천연 자원은 영원하지 않고, AI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핵심적인 분야”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 일답.

지난 3년 반 동안 UAE 정부가 ATRC에 쏟은 투자 규모는.
“ATRC는 UAE를 지식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국가 전략의 중요한 부문이므로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고만 말씀드리겠다. 전세계 70~80개 이상 대학에 펀딩하고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를 확보하고 있다. ATRC에만 해도 77개국에서 온 우수한 인력들이 있다.”
석유 부국 UAE는 왜 AI 투자에 이토록 공을 들이나.
“AI가 미래에 중요한 분야라고 생각해서다. 석유는 여전히 우리 경제의 한 축이지만, 우리는 석유가 마지막 배럴에 이르는 순간을 대비해야 한다. 경제를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또 다른 레버리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석유로 얻은 부를 지식 경제를 가속화하는데 쓸 것이다.”
팰컨40B, 팰컨 180B 등 UAE가 개발한 생성형 AI가 오픈소스 기반인 점이 눈에 띈다.
“AI는 그 자체로 차세대의 큰 물결이다. 소수의 빅테크 회사가 통제해선 안 된다. 여러 사회, 주권 국가들이 쓸 수 있어야 한다. 오픈AI의 챗GPT와 구글 등 미국 주도 빅테크들의 AI는 폐쇄형 AI다. 인스타그램, 스냅챗 등 소셜미디어(SNS)가 우리의 일상부터 병원 기록까지 모든 걸 기록 하고 있다. 소수가 우리 정보를 통제한다는 건 어떤 면에선 위험하다. 개인과 국가가 의존적으로 될 수 밖에 없어서다. 우리 AI 프로그램은 소스를 당신의 개인 컴퓨터에 다운 받아 쓰는 방식이다. 각 개인, 기업, 나라가 AI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보호할 수 있다.”
한국과의 협력 계획은.
“한국도 수십 년 전 기술이 없었지만, 오늘 날엔 기술 수출국이 됐다. UAE는 석유와 돈, 인재 등 우리가 가진 모든 자산을 활용해 여정을 이어가려 한다. 한국의 기업·정부와 협력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오는 2월 UAE에서 열리는 세계정부 정상회의에서 AI를 활용한 주요 정부 서비스를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서 한국과 UAE가 더 많이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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