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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9시간 방한에 석달 공들였다…올트먼이 찾는 AI칩 파트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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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18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8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뉴스

오는 26일 방한하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에 19시간 머물며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DS부문)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물론, 삼성·SK와 협력하는 국내 반도체 팹리스(설계) 스타트업들을 두루 만날 예정이다. 방한 초점은 인공지능(AI) 반도체, 그중에서도 고대역폭메모리(HBM)로 알려졌다.

24일 반도체·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올트먼 CEO는 기존 6시간으로 예정했던 일정을 19시간으로 늘려, 이중 17시간을 국내 반도체 업계 면담으로 빼곡히 채우는 강행군을 소화할 계획이다. 올트먼은 이번 방한을 3개월 전부터 계획할 만큼 공을 들였으며, 약속한 업체들에 논의 내용은 물론 만남 여부에 대해서까지 각별한 보안을 요청했다고 한다. ‘챗GPT 아버지’의 AI 반도체 염원이 한국 반도체 기업 손으로 실현될지 주목된다.

방한 키워드, AI 반도체와 HBM

올트먼 CEO는 이번 방한의 가장 긴 시간을 경계현 사장과의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 투어에 할애할 것으로 알려졌다. 평택 공장은 삼성의 반도체 역량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단일 규모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시설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상공에서 보고 감탄했고 2022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 첫 일정으로 찾았던 곳이다. SK의 경우, 한때 최태원 SK 회장과 만날 가능성이 언급됐으나 곽노정 대표 면담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이름을 밝히지 않은 국내 AI 업체 대표는 “올트먼 CEO가 한국의 소프트웨어·데이터 스타트업에도 관심이 많지만, 이번 일정은 AI 반도체와 HBM에 초점을 뒀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 칩을 생산하거나 SK하이닉스와 협력관계인 스타트업들이 면담 목록에 올라와 있다”라고 말했다. AI 반도체 팹리스(설계전문)인 리벨리온·퓨리오사AI·사피온 등이 거론된다.

이번 방한에서 올트먼 CEO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업을 타진하는 국내 대기업과도 만날 예정이다. MS는 오픈AI의 최대 투자사로, 자사의 클라우드·오피스 소프트웨어에 챗GPT를 결합한 상품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올트먼 CEO는 오픈AI의 자체 AI 반도체 생산을 위해 글로벌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 아랍에미리트(UAE) AI 기업 G42는 물론 투자 모금을 위해 일본 소프트뱅크그룹과도 협의하고 있다. 챗GPT 같은 생성 AI의 개발·운영에는 대량의 데이터 연산을 초고속·저전력으로 해내는 반도체가 필요한데, 현재 이 시장을 독점한 엔비디아의 GPU는 고가임에도 공급이 부족하다.
올트먼 CEO는 지난 17일 미국 언론 악시오스와 인터뷰에서 “현재는 사람들이 원하는 규모로 AI 인프라를 제공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라고 말했고, MS도 지난해 사업보고서에서 ‘AI 칩 부족’을 향후 사업 위험 중 하나로 언급했다.

‘오픈AI 지분 0’ 올트먼의 하드웨어 열망

실리콘밸리의 유명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업체) YC컴비네이터 대표 출신인 올트먼 CEO는 개발자보다는 투자자에 가깝다. 챗GPT 열풍으로 자신의 몸값이 최고일 때 한국·일본·독일·프랑스·인도 등 세계 정상을 줄줄이 만난 전략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오픈AI 개발자컨퍼런스 무대에 오른 샘 올트먼 CEO(왼쪽)와 사티야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오른쪽). 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오픈AI 개발자컨퍼런스 무대에 오른 샘 올트먼 CEO(왼쪽)와 사티야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오른쪽). AP=연합뉴스

그는 오픈AI 지분을 갖고 있지 않아 지분 매각 등으로 이익을 실현할 길이 없고, 지난해 말 퇴출 해프닝에서 드러났듯 경영권을 지킬 법적 수단도 없다. 다만 ‘생성AI의 아버지’라는 상징성과 ‘올트먼이 해임되면 우리도 퇴사하겠다’는 AI 개발자들이 자산이다. 그가 ‘오픈AI + 알파(α)’를 계속 시도하는 배경이다.

올트먼은 40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그가 투자한 AI 반도체 스타트업 레인AI는 오픈AI와 구매의향 계약서를 쓰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그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투자를 받아, 애플의 전설적 디자이너였던 조니 아이브와 손 잡고 새로운 AI 전용 하드웨어를 만들려 한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올트만 낙점 기대하는 한·미·대만  

오픈AI는 엔비디아 GPU의 대안으로 자체 AI 반도체 설계 및 제조를 목표로 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오픈AI는 엔비디아 GPU의 대안으로 자체 AI 반도체 설계 및 제조를 목표로 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대형 고객에 목마른 한국 반도체 업계는 올트먼의 ‘AI 반도체 독립 선언’이 반갑다. 삼성전자는 3nm(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을 TSMC보다 먼저 양산하고도, 애플·엔비디아 같은 대형 고객사 확보에서는 TSMC에게 밀렸다. 이 때문에 반도체 스타트업에게도 첨단 공정을 내주는 등 신규 고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적자가 계속되다가 HBM으로 기사회생한 SK하이닉스는 ‘절대 을(乙)’의 입장에서 엔비디아와 함께 GPU용 HBM을 설계한 터라, 대형 고객 확보에 목마른 처지는 같다. 오픈AI 입장에서도 한국과 손잡으면 ‘설계+파운드리+메모리’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UAE 실세 왕족이 소유한 G42는 ‘UAE의 자본, 미국의 설계, 대만의 제조’가 결합된 모델이다. G42는 지난해 미국 AI 반도체 스타트업 세레브라스와 협업해 자체 AI 슈퍼컴퓨터를 구축했는데, 세레브라스의 칩은 TSMC가 위탁생산한다. 다만 최근 미국 의회가 ‘G42를 통해 미국의 기술과 칩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다’며 미 상무부에 수출 통제를 촉구했다. 오픈AI가 미-중 갈등에 연루되지 않으려면 자체 생태계를 갖춘 대만과 한국이 안전한 후보지. 이를 부각하려는 TSMC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수주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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