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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만으론 경기 못 살리는데…역성장 늪에 빠진 내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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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고물가·고금리 장기화 속에 소비 둔화 골짜기가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보복소비’ 경향이 약해지면서 상품에 이어 서비스 소비까지 흔들리는 모양새다. 지갑이 쉽사리 열리지 않다 보니 내수·수출의 간극이 커지고 경기 회복에도 타격이 있을 거란 우려가 나온다.

24일 통계청 등에 따르면 내수 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 지수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흔들리는 양상이 뚜렷하다. 지난해 7월 -3.2%(전월 대비), 8월 -0.3%, 10월 -0.8% 등으로 역성장하는 달이 많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으로 활발해진 가전·자동차 등의 소비가 위축되는 셈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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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빠르게 반등하던 외식 등 서비스 부문도 4분기 들어 경고등이 들어왔다. 서비스업 생산은 지난해 10월(-0.9%), 11월(-0.1%) 연속 전월 대비 줄었다. 특히 자영업자와 밀접한 숙박음식점업은 지난해 5월부터 ‘마이너스(-)’ 행진(전년 동기 대비)을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업도 10~11월 두 달째 감소세로 나타냈다.

상세 지표를 들여다봐도 연말 소비엔 먹구름이 꼈다. 지난해 12월 국산 승용차 내수 판매는 전년 동기보다 12% 감소했다. 차량 연료 판매량은 1년 전보다 13% 줄었고, 할인점 매출액도 같은 기간 2.2% 감소했다. 소상공인 체감경기지수는 지난해 9월 70.5에서 12월 59.0으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내수 회복을 도와줄 ‘큰손’ 유커(遊客·중국 관광객) 방한 효과도 크지 않다. 면세점 소매판매액 지수는 지난해 11월까지 13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2010년 통계 집계 이래 최장 기간 역성장이다.

늘어나는 물가·금리 부담이 소비 부진을 부추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이자 비용은 12만8988원으로 1년 전보다 24.2% 증가했다.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잔액 기준)가 2021년 말 3.01%에서 지난해 11월 5.08%로 뛰는 등 금리 상승 폭이 가파르기 때문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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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3%대에서 고공행진 중이다. 장바구니와 직결된 생활물가 상승률은 4%에 가깝고, 외식 물가도 지난해 12월 4.4% 오르는 등 넉 달째 4%대를 지키고 있다. 부산에 사는 주부 안모(63)씨는 “특히 과일은 너무 비싸서 온·오프라인 가격을 비교하고 사거나 대형마트 마감 세일을 이용하곤 한다”면서 “소비를 덜 하는 대신 은행 저축으로 돈을 모아두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가라앉는 소비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빠르게 회복 중인 수출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관세청에 따르면 수출은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달도 반도체·중국 반등에 힘입어 20일까지 일평균 수출액이 2.2% 늘었다. 무역수지도 7개월째 흑자를 찍고 있다.

수출이 호조라지만 성장의 한 축인 내수가 주춤하면 경기 회복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월호는 수출 중심 경기 회복, 민간 소비 둔화를 함께 언급하면서 “경제 부문별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 인하 지연 등으로 적어도 올 상반기까지 소비 둔화가 이어질 것”이라면서 “내수를 끌어올려야 당초 목표대로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 소비를 활성화하려면 민간 일자리를 늘리고 중산층·저소득층 소득도 높여야 하니 규제 개혁 등에 속도를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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