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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국정농단 사건' 김기춘 2년 감형…"재판 지연도 참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각각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각각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약 7년 동안 재판이 진행되고 특별검사 사임 등으로 지연된 것도 형량에 참작하겠습니다.”

2017년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이 수사·기소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7년 만에 파기환송심에서 초라한 결말을 맞았다. 앞서 대법원에서 상당 부분을 무죄 취지로 돌려보낸 데다, 재판 지연 문제까지 형량에 반영한 결과다.

24일 서울고등법원 형사6-1부(부장 원종찬·박원철·이의영)는 이날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했다. 6년 전 항소심 선고(징역 4년)의 절반이다. 기존 수감생활(1년 6개월)을 초과하는 형량이지만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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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혐의를 받는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는 기존 수감생활과 동일하거나 적은 형량이 선고됐다.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에게는 각 징역 1년 2개월, 1년, 1년 6개월이 선고됐는데 이는 이들이 구속 기소돼 그간 한 수감생활 기간과 동일하다.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과 정관주 전 문체부1차관은 수감기간(1년 6개월)보다 적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아, 확정시 형사보상 청구를 해 볼 수도 있게 됐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예술단체를 지원에서 차별·배제한 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을 결국 탄핵에까지 이르게 한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중 하나다. 특검팀은 출범 직후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을 구속했고 1·2심 모두 6개월 내에 선고되는 등 초기 진척은 빨랐으나, 대법원에서 약 2년 머문 뒤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며 재판이 길어졌다.

“예술위·영진위는 문체부에 따를 의무 있어 무죄”

2020년 1월 대법원은 예술위·영진위·출판진흥원 직원들에게 각종 명단을 보내게 하거나 수시로 심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게 한 것은 무죄로 봐야 한다고 했다. 형법상 직권남용죄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를 말하는 데, 직권을 남용했는지와 시킨 그 일이 의무 없는 일인지를 각각 살펴야 하며 둘 다 충족해야만 죄가 된다는 법리를 설시했다. 재판부는 이날 4년 전 대법원의 뜻에 따라 “예술위·영진위·출판진흥원에게는 문체부 지시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며 김 전 실장을 비롯한 이들이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건 아니다”고 판단했다.

퇴임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특검팀은 이들이 구축하고 공고화한 지원 배제 시스템이 퇴임 이후에도 굴러갔다며 죄를 물어야 한다고 했고 이는 항소심에서도 인정됐으나, 대법원은 “퇴임한 이후에는 직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 2015년 예술영화지원사업 지원배제, 2016년 문예기금 지원심의 부당개입 등에 대해선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 책임이 아니라 봤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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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건 중 최장기 지연…대법원 또 갈 듯 

재판부는 “장기간에 걸쳐 차별적 지원을 해 문화예술계 종사하는 다수 인사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줬고, 정부의 문예계 지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훼손했다”면서도,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돌려보낸 부분이 많아 형량을 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기타 양형상 참작 사유’로 재판 지연도 참작한다고 했다. 파기환송심만 3년이 걸렸는데 ‘가짜 수산업자 사건’으로 박영수 특검이 사임한 탓에 특검법을 고쳐 서울고검이 사건을 이어받기까지 2년간 공전했다.

여태까지 확정되지 않은 국정농단 사건은 이 사건이 유일하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남은 6개월을 살아야 하는 김기춘 전 실장은 또다시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조 전 수석의 남편이자 변호인인 박성엽 변호사는 “판결문 내용을 검토한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최순실 빼고 다 나왔는데…김기춘·조윤선만 남은 국정농단 사건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이날 파기환송심 선고가 확정되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피고인 51명의 재판은 마침내 마무리된다. 2016년 11월 국정농단 핵심인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씨)가 첫 번째로 구속기소 된 뒤 7년여간 동시다발적으로 재판이 진행된 결과다.

국정농단 의혹은 2016년 9월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보도에 이어 최씨의 태블릿PC가 공개되며 그 전모를 드러냈다. 검찰과 특검 수사 과정에서 ‘박근혜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화여대 학사 비리  ▶비선 진료 ▶청와대 문건 유출  ▶삼성·롯데 뇌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정호성·안봉근·이재만) 등 청와대 핵심 인사들은 물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 이대 학사 비리에 개입한 대학 교수진도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다.

피고인 상당수가 재판 끝에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최씨를 제외하고는 현재 모두 자유의 몸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구속기소 된 지 3년 9개월만인 2021년 1월 대법원에서 장기간의 징역형이 확정됐으나 그 해 말 사면됐다. 이 회장도 기소된 지 4년만인 2021년 1월 18일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받았으나 이듬해 사면됐다. 최씨 다음으로 무거운 형(징역 4년)을 선고받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은 2021년 9월 출소한 뒤 정책평가연구원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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