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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원이 수원시민까지 전화…분노 키우는 무제한 총선ARS

중앙일보

입력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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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에 사는 직장인 김모(30)씨는 일요일인 지난 21일 오후 8시쯤 ‘02-784-XXXX(국회의원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잠 투정이 심한 10개월 된 아들을 재우다 온 전화여서 급히 끊었지만,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 아들을 다시 재우느라 곤욕을 치뤘다. 김씨는 “밤이고 낮이고 심지어 출근시간 전인 새벽에도 선거 관련 전화가 와서 미칠 지경”이라고 말했다.

4·10 국회의원 총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예비후보들의 선거운동 전화·문자 피해가 심각하다. 특히 전국에서 지역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ARS 전화는 ‘무제한 공해’다. 광교에 사는 이모(47)씨는 “경북 지역번호인 054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구미 현역 국회의원이 선거를 독려했고, 인천 지역 032 전화는 경기 부천에서 출마한다는 예비후보가 23초 동안 자동으로 떠들다 뚝 끊기더라”며 “선거 전화로 일상이 마비되고 있다”고 했다.

수도권의 한 지역구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예비후보의 문자 메시지. 여론조사 적합도 조사에서 자신을 선택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진 후보자 캠프

수도권의 한 지역구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예비후보의 문자 메시지. 여론조사 적합도 조사에서 자신을 선택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진 후보자 캠프

현행 선거법상 예비후보 등록 이후 후보자가 이름과 출마 지역을 밝히며 투표를 독려하는 전화를 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제재할 방법은 없다. 특히 ARS 전화는 선거관리위원회 신고나 검토 절차 없이 횟수도 무제한 가능하다. 지난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안녕하십니까 허경영 대통령 후보입니다’라는 ARS 음성 메시지가 전 국민에게 회자된 까닭이 바로 ARS 선거운동을 제한 없이 허용한 때문이다. 문자 메시지는 선관위에 신고한 발신 전화번호로 선거마다 유권자 1명 당 8회까지 할 수 있다.

국회의원 후보들의 문자 메시지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연락을 주고 받은 적도 없는데, 어디서 어떻게 개인정보인 휴대전화 번호를 수집해 사진을 첨부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지 너무 불편하다.”(오산 거주 30대 여성)

수도권의 한 지역구에 출마한 국민의힘 국회의원 예비후보의 문자 메시지. 정치후원금을 모금한다는 내용과 함께 모금 계좌를 표기했다. 사진 후보자 캠프

수도권의 한 지역구에 출마한 국민의힘 국회의원 예비후보의 문자 메시지. 정치후원금을 모금한다는 내용과 함께 모금 계좌를 표기했다. 사진 후보자 캠프

다만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해 유권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한 경우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선거 사무소와 공직선거 후보자 개인에게 행정처분 제재를 할 수 있다. 지난 21대 총선 때는 행정처분은 모두 105건(과태료 1건, 시정조치 명령 104건)으로 수집한 개인정보를 파기하지 않은 후보자에게 300만원을 부과한 게 유일한 과태료 처분 사례였다. 위원회가 지난 2022년 7월 지방선거 당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접수해 조사한 사건은 230건으로 조만간 행정처분이 이뤄질 예정이다.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은 “선거철이면 쏟아지는 유세 홍보 문자 메시지에 대해 중장기적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며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느낄 수 있는 불만이자 불편일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위원회 조사총괄과 관계자는 “신고인들이 문자나 전화를 받고 내 정보를 어디서 얻었느냐고 요구하면 선거사무소에선 수집 출처를 밝혀야 하는데 출처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개인정보보호법과 선거법이 상호 보완할 수 있도록 선관위와 지속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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