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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분쟁 줄이자" 시공사, 조합에 공사비 세부내역 공개…'표준계약서' 배포

중앙일보

입력

2일 공사비 미지급으로 공사가 중단된 서울 은평구 대조동 대조1구역 주택재개발 현장 입구에 공사 중단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2일 공사비 미지급으로 공사가 중단된 서울 은평구 대조동 대조1구역 주택재개발 현장 입구에 공사 중단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국토교통부가 정비조합과 시공사가 공사계약을 체결할 때 활용하는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를 23일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협회 등에 배포했다. 최근 정비사업에서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분쟁이 잇따르면서다. 표준공사계약서로 계약하는 시공사는 조합에 공사비 세부 내역을 밝혀야 하며, 설계 변동과 물가 상승으로 공사비를 증액할 때는 표준계약서 기준을 활용해야 한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대부분 정비사업 현장에서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공사비 분쟁은 코로나19 등을 겪으면서 원자잿값, 인건비가 크게 오른 데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금융비용 부담이 더해진 탓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주거용 건물의 건설공사비 지수는 152.54로 2020년 11월(120.59)과 비교해 32.0% 상승했다.

시공사는 원자잿값, 금융비용 등 상승분을 공사비에 제대로 반영하고자 한다. 반면 조합은 당초 시공 계약 당시 공사비를 확정한 데다 시공사의 증액 요구 항목 등이 불분명하고, 금액이 과도하게 책정된다는 입장이다. 분쟁이 길어지면 최악의 경우 ▶시공계약 해지(상계주공5단지) ▶공사중단(둔촌주공, 대조1구역) ▶입주지연(신월4구역)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이에 국토부는 표준공사계약서를 도입해 분쟁 요소를 사전에 차단할 방침이다. 우선 표준계약서에는 시공사 선정 후 계약 체결 전까지 시공사가 세부 산출내역서를 제출해 공사비 근거를 명확하게 남기도록 했다. 현재 많은 정비사업에서 계약서에 공사비의 세부 내역을 넣지 않고, 총액만으로 계약하고 있다. 이럴 경우 향후 설계변경 등으로 시공사가 증액을 요구할 때 조합이 증액의 적정성을 판단하기 어려워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됐다.

설계 변경과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 기준도 표준계약서에 담겼다. 설계 변경 때 '단순 협의'를 거쳐 공사비를 조정하도록 해 기준이 모호한 경우가 많아서다. 표준계약서는 설계 변경으로 추가되는 자재가 기존 품목인지, 신규 품목인지 등에 따른 단가 산정 방법을 제시했다. 아울러 물가 변동을 공사비에 반영할 때는 국가계약법에 따른 지수조정률 방식을 활용하도록 했다. 총공사비를 노무비, 경비, 재료비 등 항목별로 구분해 각각의 물가지수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을 적용하는데, 건설공사 물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착공 이후 특정 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물가를 일부 반영할 수 있게 하는 조항도 신설된다.

정부가 정비사업 표준계약서를 배포하는 것은 2010년 폐지 이후 14년 만이다. 그동안 2011년 서울시가 마련한 표준계약서가 주로 사용됐지만, 물가 반영 기준 등 불명확한 부분이 많았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다만 표준계약서는 권장 사항이기 때문에 사업장에서 표준계약서를 기본으로 한 변형 양식이 활용돼야 공사비 분쟁 완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표준계약서가 널리 활용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지자체의 정비사업 기준 등과 표준계약서 내용이 충돌할 여지가 있어 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향후 공사비 분쟁이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사비 분쟁에 시달려온 건설사와 조합에서도 "공사비 책정 ‘기준’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양쪽 입장을 모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표준공사계약서가 사용된 정비사업장이 하나둘 늘어나면 실무적으로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토부는 현재 공사비 분쟁 중인 사업장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함께 관리하고, 정비사업 분쟁 조정기구인 도시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에 재판상 화해 효력을 부여하는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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