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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남녀차별 없어도…중노위 "특정 성에 불리한 승진심사하면 '차별'"

중앙일보

입력

인사규정 등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이 없었더라도, 간접적으로 특정 성(性)에 불리한 승진심사를 하면 남녀차별이라는 노동당국의 판단이 나왔다.

중앙노동위원회는 2명의 여성 직원을 승진심사에서 차별한 사업주에 대해 남녀차별을 한 것으로 보고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23일 밝혔다. 고용상 성차별 시정제도가 2022년 도입된 이후 내려진 두 번째 시정명령이다.

중노위에 따르면 종사자 수 1000명의 기계제조·판매업체 A사는 지난해 상반기 승진심사 과정에서 승진대상자 여성 2명을 모두 탈락시켰다. 반면 승진대상자 남성 4명 중 3명은 2급갑(과장급)으로 승진했다. A사는 취업규칙이나 인사규정 등 승진과 관련된 규정을 남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지만, 중노위는 이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간접 차별’이 존재했다고 판단했다.

A사 국내사업본부에서 직접적인 영업활동을 하는 ‘영업관리직’은 전원 남성으로, 직접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 ‘영업지원직’은 전원 여성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A사는 매출점유율과 채권점유율 등을 승진심사 기준으로 사용했다. 영업활동 업무가 없는 지원직 소속 여성들은 애당초 충족할 수 없는 기준이다. 승진심사에서 탈락한 지원직 여성 2명은 3년간 인사평가 평균이 관리직 남성 직원보다 동일하거나 더 높았고, 직급 근무기간도 승진한 남성 직원들보다 길었다.

A사는 “(탈락한 여성 직원들은) 입직 경로의 차이, 업무 확장성의 차이 등으로 고급관리자로 가는 역량이 부족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노위는 ▶여성 직원 1명과 비슷한 시기에 동일하게 고졸로 입사한 남성 직원들은 모두 2급갑 이상으로 승진한 상태라는 점 ▶2급갑으로 승진한다고 반드시 관리자로서 보직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실제 2급갑 이상 남성 직원 중 관리자가 아닌 자가 많다는 점 등에서 A사의 불리한 처우를 정당화할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A사의 2022년 6월 기준 회사 남녀 성비는 88.1% 대 11.9%였지만, 2급갑 이상 성비는 96.7% 대 3.2%로 극단적인 차이를 보였다. 특히 국내사업본부에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2급을에서 2급갑으로 승진한 12명 중 여성 직원은 전혀 없었다.

당초 초심 지방노동위원회는 직무상 차이에 의한 승진 결정이라 보고 차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중노위는 이러한 통계적 결과, 승진심사 기준, 승진 이후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성별에 따른 간접차별이라 판단해 승진심사를 다시 하도록 하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사업주가 정당한 이유 없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1억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김태기 중노위 위원장은 “외견상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해 남녀를 동일하게 처우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여성이 현저히 적고, 기준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한 경우를 성차별로 인정한 사례”라며 “이번 판정이 노동시장에 활력을 주고 질적 수준을 높이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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