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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송년회는 옛말…연말 식당가는 밤보다 낮이 밝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기업에 다니는 김원미(38)씨는 지난해 연말 송년회를 처음 저녁이 아닌 점심에 했다. 송년회를 언제 할지 묻는 사내 투표에서 팀원들이 만장일치로 점심을 선택해서다. 2·3차까지 이어지는 거나한 술자리는 없었지만, 팀원들과 간단히 선물도 주고받으면서 오히려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김씨는 “원래 송년회는 늘 삼겹살에 소주였지만, 점심으로 바뀌니 술값을 아낄 수 있어서 1인당 6만원짜리 비싼 샤부샤부까지 먹었다”면서 “요즘 젊은 직원들은 저녁에도 자기 시간을 가지기 원하는 데다, 꼭 술을 먹어야 한다는 분위기도 사라지고 있어 앞으로 점심 선호 현상이 이어질 것 같다”고 했다.

연말에도 점심 장사가 저녁보다 호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지난해 처음 실내 마스크 착용 없는 연말을 보냈다. 하지만 저녁 모임 기피 분위기는 계속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를 중시하고 음주를 배제하는 분위기가 더 커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인천시 부평역 내 음식점 앞을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뉴스1

인천시 부평역 내 음식점 앞을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뉴스1

23일 한국신용데이터가 경영관리 서비스 ‘캐시노트’ 이용하는 서울 시내 사업장 20만 곳의 카드 매출(신용·체크카드)을 분석한 결과, 전년 동기 대비 지난달 외식업 매출은 6% 증가했다.

다만 시간대별로 매출 증가율에 차이가 있었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외식업 매출은 주간(오전 6시~오후 6시)에 7% 늘어났지만, 야간(오후 6시~다음날 오전 6시)은 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송년 모임이 많은 연말임에도 점심 장사가 저녁보다 훨씬 더 호황을 보인 것이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2022년 12월은 코로나19로 인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남아 있어서, 여전히 저녁 장사가 위축돼 있던 시기였다. 올해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사정이 다소 나아졌지만, 야간 시간대 매출 증가율은 4%에 그쳤다. 심야 경제가 아직 코로나19 이전으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오피스 밀집 지역서도 점심 쏠림

그나마 저녁 모임이 잦은 직장인이나 유동인구가 밀집한 지역에서도 저녁 매출 증가 둔화 현상이 나타났다.

서울 강남 일대의 대표적 오피스 밀집 지역인 역삼동의 지난달 외식업 주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 늘었다. 하지만 야간은 절반 수준인 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잠실동은 주간(11%)과 야간(3%)의 매출 증가율 차이가 3배를 넘을 정도로 점심 장사 쏠림이 두드러졌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광화문 일대는 이들 지역과 달리 지난달 주간(15%)·야간(16%)의 매출 증가율이 거의 유사했다. 하지만 광화문도 지난달 마지막 주를 뺀 첫째 주에서 셋째 주 외식업 매출은 대체로 낮 시간대 증가율이 높게 나타났다. 반면 마지막 주만 주간 매출 증가율(3%)이 야간 매출 증가율(15%)보다 크게 떨어지면서, 지난달 전체 주간 매출 증가율도 떨어뜨렸다. 연말 휴가 등의 영향으로 광화문 직장인의 점심 매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저녁은 보신각 타종식 등으로 관광객 매출이 증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직장인보다는 관광객이나 젊은 층이 많이 찾는 홍대 일대는 주간(1%)·야간(2%) 매출 증가율이 엇비슷하게 나왔다. 반면 다른 지역보다도 특히 직장인 비율이 높은 여의도는 지난달 주간 외식업 매출이 전년과 동일(0%)하게 나왔다. 하지만 같은 기간 야간(4%) 매출은 더 많이 증가했다.

“회식 종말 진행…문화 행사로 빈자리 채워야”

코로나19 이후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이 본격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심야 경제 회복이 여전히 지지부진하자 저녁 모임 기피 현상이 하나의 트렌드로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저녁 모임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했고, 재택·유연 근무 등으로 업무 시간대가 다양해지면서 퇴근 후에 사람들을 한데 모으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다만, 매출 단위가 큰 저녁 영업이 위축하면 그만큼 자영업자 수입도 줄 수밖에 없어 이와 관련 대책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1인 가구 증가로 가족 단위의 회식 종말, 워라밸 중요성과 근무시간대의 변화로 회사 단위의 회식 종말이 진행되는 중”이라면서 “심야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과거처럼 회식이 다시 늘어나길 기대하기보다 그 빈자리를 채워줄 다양한 문화 행사를 만들어 사람들을 다시 끌어모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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