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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150명 사슴 1000마리…‘안마도 무법자’ 해결책 찾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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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전남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에 야생화된 사슴 무리가 돌아다니고 있다. 1990년대 야산에 버려진 사슴이 1000여마리까지 늘어나면서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영광군]

전남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에 야생화된 사슴 무리가 돌아다니고 있다. 1990년대 야산에 버려진 사슴이 1000여마리까지 늘어나면서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영광군]

굴비 산지로 유명한 전남 영광군 낙월면에는 30여년간 사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온 섬이 있다. 꽃사슴과 엘드사슴  등 1000여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안마도(鞍馬島)다. 야생화된 사슴은 수십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니며 섬 곳곳을 파괴해왔다. 온갖 농작물과 산림을 짓이겨 훼손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덤까지 파헤쳤다.

그동안 섬 주민 150여명은 사슴의 횡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축산법상 사슴은 ‘가축’으로 분류돼 임의로 포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축은 정해진 도축 절차에 따라야 하고, 동물보호법에 따라 사냥도 할 수 없다. 영광군 등은 관련법에 따라 축사에서 사슴을 기를 것을 요구했지만 소유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안마도 강용남 이장은 “영광군을 통해 정부 각 부처에 수차례 사슴을 없애달라고 요청했으나 ‘현행법 때문에 해결이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영광군에 따르면 안마도에 사슴이 들어온 건 1985년쯤이다. 축산업자 3명이 녹용 채취를 위해 10여마리를 기른 게 시작이었다. 하지만 사슴들은 1990년대 들어 녹용 수요가 줄어들자 야산에 버려졌다.

섬에 유기된 사슴들은 안마도를 위협하는 존재로 변해갔다. 폭발적인 번식력을 과시하며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여의도 면적(2.9㎢)의 두 배인 5.8㎢ 섬에 사슴의 천적이 없는 것도 개체 수 증가에 한몫을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야생화된 일부 무리는 바다를 헤엄쳐 인근 섬으로 진출해 번식해갔다. 영광군은 안마도 600여마리를 비롯해 부속섬인 낙월도250여마리, 대석만도 150여마리 등 1000여마리의 사슴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민 수보다 5배가량 많아진 사슴은 섬 주인인양 행세했다. 날쌘 사슴들은 밭에 설치된 3m 높이의 그물망을 뛰어넘어 농작물을 파헤치곤 했다. 길에서 맞닥뜨린 사슴들은 날카로운 뿔로 주민을 위협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주민들은 “사슴들이 밭작물을 마구 먹어대는 바람에 사실상 농사를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사슴이 야행성 동물이라는 점도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밤마다 수십마리씩 뛰어다니며 괴성을 지르는 바람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라고 한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지난해 7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사슴을 없애달라”며 집단 민원을 제기했다.

국민권익위는 무단 방치된 사슴에 대한 현장 조사 및 여론 수렴에 나섰다. 설문조사 결과 국민 73%가 ‘야생화된 가축이 손해를 끼치면 일부 지역에 한해 야생동물에 포함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주민 피해가 극심하니 총기를 사용해 포획하자’는 의견에는 61%가 찬성했다.

권익위는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영광군과 머리를 맞댄 끝에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 가축 사육업종 폐업 때 가축 처분을 의무화하는 ‘무단 유기 가축 처리 방안’을 지난 16일 관련 부처에 권고했다. 농장을 폐업할 땐 남은 가축을 반드시 처분하도록 한 게 골자다. 가축을 처분하지 않고 유기하는 업자에 대한 처벌 조항도 만들도록 권고했다.

환경부는 안마도 사슴을 법정관리 대상 ‘유해 동물’로 지정할 것인지 결정할 방침이다. 유해 동물로 지정되면 총기를 사용한 포획이나 개체 수 조절이 가능해진다. 영광군도 전염병 감염 여부 등을 확인한 후 육지 이송이나 살처분 등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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