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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젊은 유방암 환자 발생률 갈수록 높아져…‘신약 허들’ 낮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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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권선미 기자의 월요藥담회

전문 의료진도 기다리는 약 ‘엔허투’
건보 적용 안돼 접근성 개선돼야

유방암은 한국 여성에게 가장 많이 생기고 가장 많이 사망하는 암이다. 유방암은 조기 발견하면 10명 중 9명이 5년 이상 생존한다. 10년 생존율도 89% 이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서구와 달리 폐경 전 젊은 유방암 환자 발생률이 높은 편이다. 국내 유방암 환자 5명 중 3명은 사회·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4050대 여성이다. 40세 이하 환자도 10.5%나 된다. 유방암 조기 발견만큼이나 생존 기간을 늘려 암 사망률을 낮추는 적극적 치료가 중요하다.

유방암 치료 접근성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유방암 생존기간을 기존 표준치료제 대비 획기적으로 늘리면서 주목받았던 유방암 신약(엔허투)의 국내 빠른 허가와 건강보험 적용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6건의 국민동의청원은 무려 15만 명가량 서명했다.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면서 엄마이자 아내를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인 것이다.

엔허투는 유방암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의료진도 기다리는 약이다.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에서 엔허투는 기존 표준치료제와 비교해 질병 진행 없이 생존한 기간을 4배가량 늘린 임상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학술대회에서는 드물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현존하는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 중에서 엔허투 같은 임상적 유용성을 개선한 경우는 없었다. 엔허투는 국내 허가도 2022년 9월에 이뤄져 도입됐다. 그런데 임상 현장에서 곧바로 쓰기는 어려웠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다. 아무리 약효가 좋더라도 연간 1억원이 넘는 약값을 감당할 수 있는 환자는 드물다. 있어도 없는 약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처음으로 개최된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엔허투는 높은 급여의 벽을 넘지 못했다. 말기 유방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리면서 혁신성을 인정받고 치료 접근성 개선을 절실히 바라는 환자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재심의 판정을 내린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최근 정부에서도 현행 급여 평가 제도의 경제성 평가 방식이 신약의 혁신 가치를 반영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해 제도적 개선 방안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는 사실이다.

혁신 신약에 대한 경제성 평가 제도의 한계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OECD 상위 10개국 중 해당 치료제의 보험 적용이 되지 않은 나라는 현재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영국·스코틀랜드 등 해외에서는 해당 치료제의 급여 평가 시 질보정생존년(QALY)이라는 지표에 이례적인 가중치를 둬 신약의 혁신 가치를 인정하고 환자가 적시에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신약의 급여에 있어 환자의 생존기간 연장을 위해 환자가 ‘적절한 시기에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근본적인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혁신 신약에 대한 적절한 가치 인정을 통한 혁신 신약의 치료 접근 개선도 현실화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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