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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 메카' 한국이 흔들린다...6대 산업 수출 2→5위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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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8일 충남 아산시에 소재한 영국 에드워드 사의 반도체 진공펌프 공장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산업통상자원부]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8일 충남 아산시에 소재한 영국 에드워드 사의 반도체 진공펌프 공장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산업통상자원부]

반도체·바이오·미래차 등 세계 첨단산업 수출 경쟁에서 한국이 4년만에 점유율 2위→5위로 뚝 떨어졌다. 첨단산업 수출 시장이 빠르게 커졌는데도 한국 기업들의 관련 수출이 상대적으로 정체된 영향이 크다.

2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수출 통계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지난 2022년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미래차·바이오·로봇 등 6대 첨단산업에서 6.5%(수출액 1860억 달러, 249조원)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8.4%(1884억 달러, 252조원)보다 1.9%포인트 줄었다. 그러면서 점유율 순위도 4년 만에 2위에서 5위로 하락했다. 중국은 1위를 지켰고, 한국이 밀려난 자리를 독일(2위)·대만(3위)·미국(4위)이 대신했다. ITC는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 및 무역 행정을 위해 운영하는 독립 행정 기구다.

첨단기술 시장 커졌는데, 한국은 왜?

한국이 부진한 가장 큰 원인은 ‘상대적 정체’였다. 세계 6대 첨단산업 수출은 4년간 24.2% 커졌지만 한국의 수출은 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산업별로 봤을 땐 반도체 수출 부진이 한국의 점유율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 2022년 한국의 6대 첨단산업 수출 총액 중 69%인 1285억 달러(172조원)가 반도체 수출일 정도로 6대 첨단산업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일단 크다. 그런데 2018~2022년 전 세계 반도체 수출시장은 37.5% 커지는 동안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오히려 0.6% 줄었다. 전 세계 반도체 수출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13.0%에서 9.4%로, 순위도 2위에서 3위로 하락했다. 1위는 변동 없이 중국이었다. 인공지능(AI), 전기차 생산 증가로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는 증가했지만, 한국은 중국·대만·미국 시장과 경쟁에서 밀렸고 한국이 강세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축소된 영향으로 보인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부진은 대만의 약진과도 맞물려 있다. 한국이 반도체 수출 시장 점유율 2위에서 밀려난 자리를 대만이 차지했다. 대만은 4년 동안 반도체 수출액을 1110억 달러에서 2107억 달러로 늘리며, 수출시장 점유율도 11.2%에서 15.4%로 늘렸다. 4년간 세계 반도체 수출액이 3720억 달러 증가했는데 이 중 대만의 수출 증가액이 27%를 차지했다. 이런 호황의 핵심엔 대만 TSMC가 있다. 대만 정부는 TSMC에 국가가 부지, 산업용수 등을 지원하고 2022년엔 연구개발·설비투자 세액공제율도 높이는 등 반도체 패권을 위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대만은 자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으로 전체 6대 첨단산업 수출 점유율도 2018년 5위에서 2022년 3위로 올랐다. 반도체를 제외한 5대 첨단산업에서 대만의 수출시장 점유율은 미미한데도 이런 결과가 가능한 건, 그만큼 반도체 시장이 첨단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6대 첨단산업 중 반도체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48%다.

독일, 전기차 힘으로 2위 

이번 분석에서 또 눈에 띄는 점은 독일의 점유율 상승(8.0%→8.3%)이다. 순위도 3위에서 2위로 올랐다. 분석 대상이었던 6개국(한국·미국·일본·중국·독일·대만) 중 점유율이 오른 곳은 대만과 독일뿐이다. 정재호 경총 경제분석팀 선임위원은 “독일은 미래차·바이오처럼 전통적으로 자신들이 강했던 산업 분야에서 여전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8~2022년 전 세계 미래차(하이브리드 전기차와 일반 전기차) 수출은 250억 달러에서 1407억 달러로 5.6배 늘었는데, 이 기간 독일의 점유율은 24.7%→27.9%로 늘었다. 바이오 산업 수출시장에서도 독일은 1위(14.8%)로 2위 미국을 3.2%포인트 차로 앞섰다.

독일 폭스바겐의 전기차 'ID.4'. [사진 폭스바겐그룹코리아]

독일 폭스바겐의 전기차 'ID.4'. [사진 폭스바겐그룹코리아]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독일 폭스바겐 그룹은 이른바 ‘디젤게이트’ 이후 하이브리드차, 전기차로 빠르게 전환했고, BMW와 벤츠는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을 선점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유럽 시장에선 독일 전기차 선호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수출액도 상당히 많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중국의 추격응로 향후 미래차 수출 시장 순위는 바뀔 가능성이 크다. 2018년 1.4%에 불과했던 중국 미래차 수출 점유율은 2022년 16.1%로 독일에 이어 2위까지 올랐다. 김 교수는 “중국 전기차 업체 BYD의 성장세로 볼 때, 자동차 제조3사는 현재 폭스바겐·토요타·현대차에서 BYD·테슬라·현대차로 재편될 것”이라며 “독일 자동차 업계의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이차전지 압도적 1위 

한편 분석 기간 중 이차전지 수출 점유율은 한국이 2위를 지켰지만 점유율은 12.7%에서 7.6%로 줄었다. 중국 CATL의 약진으로 압도적 1위 중국의 점유율이 4년새 25.9%에서 43.6%로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경제계는 정부의 첨단산업 육성 전략이 더 과감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총은 “최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연합(EU) 디스플레이법 등 주요 국가들이 첨단산업 육성 지원에 나서며 기술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며 “최근 정부가 발표한 국가첨단산업벨트 조성, 혁신인재 양성 등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규제 완화와 세제지원 확대 등 전향적인 대책들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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