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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현대차 충칭 공장의 쓰라린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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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결국 헐값에 넘겨야 했다. 약 1조6000억원 들여 지은 공장을 3000억원에 팔았으니 겨우 5분의 1 건지는 데 만족해야 했다. 현대자동차 충칭(重慶)공장 얘기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공장 준공은 2017년 7월이었다. 그런데, 준공식에 당연히 왔어야 할 한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쑨정차이(孫政才) 충칭시 당서기가 그였다. 오래된 인연이다. 쑨정차이는 2002년 현대차가 중국에 진출할 때 첫 둥지를 튼 베이징 쑨이취(順義區)의 수장이었다. 그는 줄곧 승진 가도를 달려 충칭시 당서기에 올랐고, 미래 총리로 거론될 만큼 잘 나갔다. 쑨 당서기와의 ‘관시(關係)’를 활용해 중국 내륙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게 현대의 계산이었다.

그러나 준공식이 열리던 바로 그 시간, 쑨정차이는 부패 혐의로 조사 받고 있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주도한 반부패 투쟁에 걸려든 것이다. 결국 쑨 당서기는 낙마했고, 현대 충칭 공장은 시작부터 삐걱댔다.

‘중국에서는 이제 전기차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2023년 상하이 모터쇼의 BYD부스. [사진 셔터스톡]

‘중국에서는 이제 전기차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2023년 상하이 모터쇼의 BYD부스. [사진 셔터스톡]

쑨정차이가 건재했다면 순항했을까? 아니다. 현대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충칭 공장이 조업을 시작한 2017년, 중국의 한국 브랜드 공격은 집요했다. 현대차는 좋은 표적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애국주의에 흥분한 청년들이 현대차를 부수는 영상이 나돌았다. 품질도, 브랜드 가치도 애국소비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사드 직전 8%에 육박했던 시장점유율은 1%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데도 현대는 거의 동시에 충칭과 허베이(河北)성 창저우(滄州)에 공장을 건설했다. 팔리지 않는데 생산은 오히려 더 늘어나니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창저우 공장 역시 매물로 내놓은 상황이다.

‘사드’가 아니었다면 순항했을까? 아니다. 현대는 시장의 흐름을 놓쳤다. 중국 자동차 시장의 대세는 전기차다. 승용차 시장의 전기차 침투율은 약 40%(작년 12월 기준)에 달한다. 신차 10대 중 4대가 전기차인 셈이다. 그 흐름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게 바로 충칭 공장이 준공된 2017년 전후다.

공장 짓기에 바쁜 현대차는 그 흐름에 합류하지 못했다. 기아차 EV5로 중국 전기차 시장을 공략한다지만 한참 늦었다. 중국 토종 업체의 물량 공세를 당해내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관시의 함정, ‘사드’라는 지정학 위기, 시장 대응 실패… 이 모든 게 합쳐진 결과가 헐값 매각이다. 지금도 적지 않은 우리 기업이 공장 매각, 탈(脫)중국을 모색하고 있다. 회사와 업종은 다르지만, 그 원인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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