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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수입장미 들인다니…” 졸업대목 앞둔 장미농가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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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1일 경남 김해시 흥동의 한 화훼농가 냉장고에 출시를 앞둔 장미가 쌓여있다. 안대훈 기자

21일 경남 김해시 흥동의 한 화훼농가 냉장고에 출시를 앞둔 장미가 쌓여있다. 안대훈 기자

21일 오후 경남 김해시 흥동의 한 화훼농가. 5950㎡(약 1800평) 크기의 하우스 8동에서 하얀·노란·진분홍색 장미가 자라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12~2월 졸업식 대목을 맞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지만, 농장주 오모(63)씨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의 장미 농장은 겨울철 난방비만 월 900만~1000만원 든다. 하우스 실내 온도를 최저 20도 이상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 2명에, 일감이 많을 때는 추가로 인부를 써서 인건비도 월 400만~500만원이 들어간다. 올겨울 포근한 날씨로 진드기가 말썽이라 주 1~2회 하우스 전체에 농약을 치는데 그 비용만 회당 20만원이다.

오씨는 “유류비·인건비 등 생산비가 다 올랐는데 꽃값만 그대로”라며 “월 매출 1500만~1600만원을 올려도 남는 게 없다”고 했다. 그는 “이 판국에 값싼 에콰도르 장미까지 들어온다니 화훼농가들 다 죽으란 소리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에콰도르와 자유무역협정(FTA)의 일종인 전략적경제협력협정(SECA)을 타결했다. 이르면 올 상반기 국회에 비준 동의를 요청할 계획이다. SECA가 발효되면 장미·국화는 12년, 카네이션은 15년에 걸쳐 관세가 철폐된다.

관세가 철폐되면 가장 크게 타격받을 품목은 장미다. 에콰도르는 장미 절화(cut flower·꽃다발과 화환 제작에 쓰이는 자른 꽃)가 전체 수출 화훼품목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적도 부근에 위치해 난방비 등이 적게 들어 수출단가도 낮다. 업계에선 국내산이 10송이에 7000~8000원이면 에콰도르산은 3000~4000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때문에 국내 화훼농가는 SECA 타결에 반발하고 있다. 경남도 등에 따르면 2016년 한-콜롬비아 등 FTA 발효 후에 국내산 카네이션의 95%, 국화 70%, 장미 30~35%가 수입산으로 대체됐다. 부산·경남화훼생산자연합회 관계자는 “SECA까지 발효되면 카네이션·국화에 이어 장미까지 우리 시장에서 국내산 꽃을 보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이에 화훼농가가 밀집한 경기도, 전남, 부산·경남을 중심으로 장미 관세 철폐 유보와 실효성 있는 대책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화훼자조금협의회는 22일 서울 국회를 항의 방문하고, 부산·경남화훼생산자연합회는 오는 26일 세종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농민 500명(집회 신고인원)이 참여한 가운데 항의 시위를 열 예정이다.

이들 화훼농가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인 ‘화훼산업진흥법’ 개정안 통과도 요구하고 있다. 민홍철 의원(경남 김해갑)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화환에 사용된 화훼의 원산지 표시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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