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너네 벼르고 있다" 납품업체 돈 뜯어낸 한전 전 직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전력공사(한전) 직원이 재직 당시 자재 납품업체를 협박해 1200만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8단독 김선숙 판사는 공갈 및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전직 한전 직원 A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1400만원을 지난 17일 선고했다.

A씨는 2014년 1월 강원도 춘천의 자재 납품업체인 B회사를 협박해 변호사비 명목 등으로 두 차례에 걸쳐 현금 7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비슷한 시기 전남 나주와 충북 충주 소재 납품업체로부터 각각 인사비와 명절 떡값 명목으로 490만원, 70만원을 수수한 혐의도 있다. A씨가 납품업체로부터 받은 뇌물은 총 1260만원으로 조사됐다.

A씨는 당시 한전에서 자재 검사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한전 홈페이지에 접수된 민원으로 같은 팀 후배 직원이 징계를 받을 상황에 놓이자, 관련 납품업체인 B회사 관계자에 전화를 걸어 변호사비 500만원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당시 “내 새끼가 너 때문에 징계를 받게 생겼는데 책임감을 느껴야 하지 않느냐”며 “지금 검사관들이 너희 업체를 벼르고 있다. 징계를 막아야 너도 산다. 이번 일로 너희 업체가 부정당업체로 지정되면 한전은 물론이고 관공서에 납품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이후에도 B회사 측에 “돈 보낼 곳이 있는데 운전 중이라 보낼 수가 없다”며 다른 사람 명의 계좌로 200만원을 추가로 보낼 것을 요구했다. B회사 관계자가 머뭇거리자 “(후배 직원) 징계 건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A씨는 3년 뒤인 2017년 감사원 감사에서 이런 사실이 드러나 해고 당했고, 2021년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B회사 관계자로부터 500만원을 받은 적이 없고, 추가로 받은 200만원은 빌린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법원은 그러나 돈을 건넨 B 회사 관계자 진술 등을 토대로 A씨가 돈을 주지 않을 경우 자재 납품과 관련해 불이익을 줄 것 처럼 협박하고, 실제로 돈을 받아 냈다고 판단했다.

A씨는 다른 납품업체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타인 명의 계좌가 사용된 것을 근거로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으나, 해당 계좌 명의자는 A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던 원재료 납품업체 직원으로 나타났다. A씨에게 돈을 준 업체 대표가 뇌물공여 사실을 인정한 점 역시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법원은 양형 이유에 대해선 “이 사건 범행은 공무원의 직무 공정성과 한전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를 훼손시키는 행위”라면서도 “A씨가 이 사건으로 해고돼 소송 중이고, 생계유지에 어려움이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한전 측은 “직원의 뇌물수수등 비위행위와 관련해서는 무괸용 원칙을 적용해 중대성 및 고의성이 있을시 해임 등의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시행하는 등 징계기준을 강화해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