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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2024년 글로벌 키워드, GPS에서 찾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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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4호 31면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

2023년이 주식 투자자에게 대체로 큰 재미를 본 해였다면 많은 시장 분석가에게는 망신스러운 한 해가 됐다. 지난해 S&P500지수는 24%, 나스닥은 43% 급등하며 마감했으나 연초에는 주식시장 약세를 점친 전문가가 다수였다. 세계 굴지의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의 지난해 주가 예상이 연초에는 마이너스였을 정도다. 거시경제 전망도 고금리 파장에 따른 경기 침체에 대한 경고가 지배적이었지만 3% 성장으로 선방한 해로 끝났다. “예측이란 본래 어렵다. 특히 미래에 관해선 더더욱 그렇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오늘날 정치·경제 불확실성과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은 만큼 다양한 변수에 대처할 선제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올해도 다양한 난제로 험로 예상
트럼프 리스크 사전 관리하고
정책과 패러다임 전환 활용해야
장기침체 해결 위한 개혁 필요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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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길을 잘 찾으려면 GPS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교통정보시스템인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를 직역하면 글로벌 상황 정보시스템으로, 국제 정치·경제 전반에 걸친 나침반으로도 쓰일 법하다. 높은 파고의 한 해에 GPS로 요약된 단어가 함축하는 2024년의 글로벌 위험 신호와 대응 전략을 살펴보자.

첫째, G는 Geopolitics, 올해는 지정학적 도전의 해라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홍해를 둘러싼 해상 충돌과 중동전쟁 확산, 북한 도발의 노골화에다 지난주 친미 성향 라이칭더 총통 선임으로 대만 해협 등 동북아 긴장은 고조될 조짐이다. 전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참여하는 역대급 선거의 해에 지구촌의 동시다발적 전체주의 도발은 민주주의 위기를 심화시킨다. 2024년 최대 위협 요인으로 꼽히는 트럼프 리스크 가시화로 세계 질서, 국제 무역, 기후변화 대응 관련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 복귀를 내건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할 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바이든의 핵심 어젠다 파기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리스크 관리를 위한 다각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달러 기준 국내총생산(GDP) 역성장과 2년 연속 인구 감소의 ‘이중 침체’가 보여준 중국 경제 둔화는 오히려 상호 존중의 호혜적 한·중 관계 정상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아울러 동북아의 자유민주 우방국이자 경기가 살아나는 일본과의 경제 협력 강화도 바람직하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통해 역내 교역을 확대하고 신기술 분야 한·일 공동 벤처 투자 등도 추진해 볼 만하다.

둘째로 P는 피봇(Pivot)으로, 정책 변화와 패러다임 전환이다. 미국 연준과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이 긴축에서 완화로 전환이 예상되나 최근 인플레 재연 조짐으로 금리 인하 시기와 규모는 매우 유동적이다. 고금리 부담은 지속될 전망이고 지난 2년간의 초강도 금리 인상 후유증도 본격화할 모양이다. 이달 초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에 따른 가상화폐 제도화가 금융시장에 큰 변혁을 예고하는 가운데 가상자산에 대한 전향적 접근이 필요해 보이나 시장 안정성 확보가 이슈다. 피봇은 호재일 수 있으나 위험을 수반한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혁명은 인류사적 변혁을 예고한다. 지난주 다보스포럼의 관심도 ‘경제와 사회 발전의 드라이버 AI’에 쏠렸다. 오늘날 ‘AI 국가주의(Nationalism)’ 열풍 속에 세계 각국은 미래 생존력을 AI 경쟁력에서 찾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도 AI 분야의 창의성과 역동성 제고를 위해 규제 혁파는 물론 벤처·스타트업 활성화 지원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추세 가운데 AI 주도 경제 발전을 생산성 증대와 잠재성장률 회복의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셋째, S는 연착륙(Soft landing)과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의 갈림길에 선 올해라는 말이다. 미국은 연착륙 전망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나 우리나라는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코스피는 정부의 세제 혜택 등 각종 인센티브 제공에도 불구하고 -7%대를 기록해 G20 국가 중 바닥 수준을 보이며 그만큼 취약한 정치·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하고 있다. 당면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극복 등 경기 연착륙이 시급하나 장기적 저성장을 피하려면 근본적 개혁 과제 실천이 관건이라는 뜻이다.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한국경제 성장 잠재력의 반전은 정부 3대 개혁 중 특히 민간투자 활성화 관점에서 노동 개혁이 우선이고 생산성 향상과 함께 오랜 경험을 쌓은 장년·노년층 인력 활용도 필요하다. 10년 전 다보스포럼에서 패널 토론에 필자와 같이 참여했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언 당시 독일 노동사회부 장관이 전해준 “청년은 빨리 달리지만, 노인은 지름길을 안다”라는 조언은 기억할 만하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해당 분야 전문성을 오래 쌓은 은퇴자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알려진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라는 말은 위기 상황에 철저히 대비했을 때 통하는 얘기다. 위기를 알고도 사전에 대처하지 못하면 위기 쓰나미는 시간문제다. 기후 위기, 인구 위기, 민주주의 위기까지 2024년은 우리 모든 경제 주체의 위기 대응과 관리 능력의 시험대를 예고한다. 세계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는 말이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오는 새해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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