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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그해여름 주연 이병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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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멜로 영화에는 몇 가지 공식이 있다. 비련의 여주인공과 순정파 남자, 운명적 만남과 이별 등. 주인공이 만나고 헤어지는 장면에선 툭하면 비가 내려 감정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이런 장치는 상투적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는 분명 효과가 있다.

30일 개봉한 '그 해 여름'(감독 조근식)도 이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뻔한 멜로 영화로 치부할 수 없는 데는 이병헌(36)과 수애(26)의 매력적 연기의 공이 크다. 특히 이병헌이 맡은 석영은 멜로물의 전형적 순정남과는 여러모로 거리가 있다. 오락가락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모습은 다분히 철없는 어린아이를 떠오르게 한다. 이것은 단점으로 작용하기보다 실제 인물처럼 생동감을 느끼게 해준다.

"처음 시나리오엔 석영에게 어두운 면이 자주 보였어요. 그래서 사전 연습을 하면서 캐릭터를 바꿔보자고 감독님과 상의했죠. 단순히 단어 몇 개로 성격을 규정짓지 말고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기로 했어요. 특히 자기 주관이 아직 뚜렷하지 않은 20대 초반 대학생이라면 이랬다 저랬다 좌충우돌하는 게 더 자연스럽죠."

영화는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주는 방송 프로그램 작가가 출연 섭외를 위해 노교수 석영을 찾아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홀로 외로이 살아가던 석영은 못이기는 체 대학 시절 연인인 정인(수애)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서 카메라는 1969년의 여름으로 돌아간다. 당시 대학생이던 석영은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던 인물. 어느 날 수내리라는 시골 마을로 농촌 봉사활동을 떠나고, 그곳에서 마을도서관 사서 정인(수애)을 만나 사랑을 싹틔운다.

"석영은 단체생활에 익숙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아요. 그런 점에선 제 대학 시절과 비슷한 면이 많죠. 영화를 보면 석영이 시골 모기에 시달리다 밤을 꼬박 새우는 장면이 있어요. 저도 서클 MT를 갔다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혼자 도망쳐 나온 일이 있거든요. 그래서 자율 직업인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6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류 최초로 미국의 유인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는 역사적인 순간 수내리 마을에는 마침내 전기가 들어온다. 도시와 시골, 선진국과 후진국의 기술 격차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런가 하면 대학가에선 3선개헌에 반대하는 학생시위가 봇물을 이룬다. 이념적으로는 무고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가는 극단적인 반공주의가 판을 친다.

석영은 사실 복잡한 시대 상황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의 관심은 오직 사랑이지만 시대의 거센 풍랑은 그와 정인을 가만두지 않고 영원한 이별을 강요한다.

"그때는 가슴이 답답한 시대였죠. 지금이라면 말도 안 된다고 콧방귀 뀌고 넘어갈 이야기가 당시에는 한 사람의 운명을 왔다갔다하게 만들어요. 무지와 오해가 무고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우면서도 아이러니했어요."

아름다운 시골 풍경과 냉정하고 살벌한 도시 분위기는 영화에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수내리 마을은 60년대 후반의 전형적인 농촌이라기보다는 '웰컴 투 동막골'처럼 평화롭고 안락한 전원에 대한 판타지를 안겨준다. 나무와 풀과 물은 너무나 낭만적이고, 사람들은 순박하다. 이병헌의 전작 중에는 '내 마음의 풍금'(99년)을 떠오르게 한다.

"비슷한 시대의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내 마음…'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을 땐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이병헌을 얘기하면서 대표적인 한류 스타라는 점을 빼놓을 순 없다. 이번 영화만 해도 언론 시사회에 앞서 일본 팬 1500여 명을 불러 모아 팬미팅 겸 시사회를 열기도 했다. 촬영장에도 수시로 일본 팬들이 찾아와 격려의 인사와 선물을 주고 갔다고 한다.

"사실 한류 스타라는 칭호는 별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런 게 배우로서는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의견이 있는 것도 알아요. 중요한 것은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골라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는 것이겠죠. 최근 할리우드 진출과 관련해 말이 많은데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받아 읽고 있는 정도예요."

글=주정완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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