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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구속" 그순간 탈출 시도…1심 무죄 뒤집고 대법 "도주죄"

중앙일보

입력

피고인 A씨는 2018년 5월 서울남부지법 형사 법정에서 준강제추행죄 등으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A씨가 법정구속될 경우를 대비해 당시 법원엔 구속영장을 집행할 사법경찰관 B씨가 와 있는 상태였다. 서울남부구치소 소속 교도관들은 A씨를 교도소로 옮기기 전 임시로 피고인 대기실로 안내했고,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A씨가 돌연 대기실 출입문을 열고 법정으로 뛰어들어갔다. A씨는 재판 관계인석과 방청석을 지나쳐 법정 출입문 방향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문 근처엔 다른 피고인들을 붙잡고 있던 또 다른 교도관들이 있었고, 이들에게 붙잡힌 A씨의 도주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검찰은 A씨가 형법 145조와 149조에 따른 도주미수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사법경찰이 집행해야” 1심 무죄에 항소한 檢

남부지검은 지난 2018년 5월 남부지법 형사법정에서 법정구속된 후 도망친 A씨를 도주미수죄로 재판에 넘겼다. 사진은 지난해 5월7일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서울남부지방검찰청. 뉴스1.

남부지검은 지난 2018년 5월 남부지법 형사법정에서 법정구속된 후 도망친 A씨를 도주미수죄로 재판에 넘겼다. 사진은 지난해 5월7일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서울남부지방검찰청. 뉴스1.

 그러나 A씨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구속영장은 검사의 지휘에 의해 사법경찰관리가 집행한다’는 형사소송법 제81조(구속영장의 집행)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구속영장은 검사의 지휘에 의해 사법경찰관이 집행하게 돼 있으므로 교도관이나 법원 경위의 안내에 따라 임시로 피고인 대기실에 들어간 것은 아직 ‘적법하게 체포 또는 구금된 상태’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A씨가 아직 사법경찰관을 대면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유로 제시됐다.

 검찰은 항소했다. 형법 제81조 단서에 따르면 구속영장은 급속을 요하는 경우엔 재판장, 수명법관 또는 수탁판사가 집행을 지휘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이들은 법원사무관 등에게도 집행을 명할 수 있고, 법원사무관은 등은 다시 사법경찰관리와 교도관, 법원 경위에게 보조를 요구할 수 있어서다. 검사→재판장→법원사무관→교도관·법원 경위에게 영장 집행이 위임됐다고 본 것이다.

대법, “검사가 인치 지휘했다면 영장 집행된 것”

대법원은 19일 검사의 적법한 지휘에 따라 교도관이 피고인을 임시 대기실에 인치했다면 사법경찰관이 아니라도 영장이 적법하게 집행된 것으로 봤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대법원 모습. 연합뉴스.

대법원은 19일 검사의 적법한 지휘에 따라 교도관이 피고인을 임시 대기실에 인치했다면 사법경찰관이 아니라도 영장이 적법하게 집행된 것으로 봤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대법원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2심 역시 영장집행 위임의 전제가 되는 ‘급속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없었다는 이유 등으로 검찰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형사소송법 규정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했다”라고도 했다.

 이 같은 원심의 판단은 19일 대법원에 의해 바뀌었다. 이날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구속·체포·압수수색·검증영장 등이 검사의 지휘에 의해 집행되고, 검사가 법정에서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전달받아 교도관 등으로 하여금 피고인을 인치하도록 지휘했다면 집행절차는 적법하게 개시된 것”이라면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교도관이 피고인에 대한 신병을 확보했다면 구속 목적이 적법하게 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도 했다.

 2019년 1월 청주지법에서 재판을 받던 C씨는 법정구속이 선고되자마자 법정 경위 등을 따돌린 후 달아났다가 다음날 자수했지만, 경찰은 도주죄에 해당하지 않아 추가조사를 하지 않았는데, 이 경우와는 달리 교도관이 A씨를 대기실로 인치한 순간 구속영장은 적법하게 집행됐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 판결의 의의에 대해 “법원이 적법하게 발부한 구속영장을 검사가 적법하게 집행·지휘해 피고인에 대한 신병을 확보했다면 그 피고인은 형법 제145조 제①항 도주죄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설시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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