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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투세 폐지" 이어 "상속세 완화"…커지는 ‘경제부처 패싱’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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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공매도 개혁 방안을 차질 없이 준비하고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1월2일 윤석열 대통령)
“상속세가 과도한 할증 과세라고 하는 데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1월17일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금투세 폐지에 이어 상속세 완화 방침까지 시사했다. 최근 굵직한 경제정책은 이처럼 깜짝 발언 형식으로 윤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제부처가 소외되면서 ‘경제부처 패싱’ 우려마저 나온다. 대통령실과 여당 등 정치권력의 영향력이 거세지면서 경제부처가 정치권 발표를 따라가는 모양새다.

경제정책방향에도 없던 금투세 폐지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주제로 열린 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주제로 열린 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18일 정부에 따르면 전날 윤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상속세 완화 발언을 하는 데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와의 사전 조율은 없었다. 익명을 원한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문제의식에 대한 언급이었고 어떻게 하자는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건 아니다”며 “그런 차원이다 보니 사전에 조율할 만한 의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 역시 “시나리오상 준비된 발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윤 대통령이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밝힌 금투세 폐지 선언을 놓고도 패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은 정부의 2024년 경제정책방향 사전브리핑이 있던 날이었다. 경제정책방향엔 각종 세제 개편안이 담기는데 금투세와 관련한 내용은 없었다. 지난해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과세 기준 상향이나 불법 공매도 금지 때도 기재부‧금융위 패싱이라는 같은 논란을 빚었다.

준비 아직인데 깜짝 발표부터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앞서다 보니 경제부처가 주도권을 잃었다는 풀이가 나온다. 이런 식의 깜짝 발표 대부분은 세금을 줄이거나 주가를 부양하는 데 집중돼있다. 포퓰리즘 또는 부자감세라는 비판도 따라붙는다. 경제정책은 재정 여건이나 정책 수요, 다른 제도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이기도 하다.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한 시민이 전광판 앞을 지나는 모습. 연합뉴스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한 시민이 전광판 앞을 지나는 모습. 연합뉴스

준비가 충분치 않은 상태로 발표가 이뤄지다 보니 혼란을 빚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 여야는 금투세 도입을 합의하면서 증권거래세는 단계적으로 인하하기로 했다. 금투세와 거래세는 밀접하게 연관 있지만, 2일 윤 대통령의 폐지 발표 당시 기획재정부는 “검토와 점검이 필요한 주제”라고만 설명하는 데 그쳤다. 금투세 폐지는 법 개정도 필요하다. 당초 여야 합의가 이뤄진 사안인 만큼 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뒤집는 상황에서 야당 반발 가능성이 크다.

나랏빚 느는데, 감세 재원 대책 없어

고차방정식은 풀지 않은 채 발표만 이뤄지다 보니 감세에 따른 재원 마련 방안도 없다. 예컨대 내년 시행이 예정됐던 금투세가 폐지될 경우 1조5000억원의 세수가 들어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거래세 인하 조치를 그대로 유지하면 재정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상속세 완화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만큼 세수 감소 규모를 추정하기 어렵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재정은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올해 정부 예산안을 기준으로 나라 살림살이 지표인 관리재정수지는 91조60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지난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58조2000억원이었는데 큰 폭으로 오르는 것이다. 올해 말이면 국가채무 규모는 1195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전망치(1134조4000억원)보다 61조4000억원 늘어난다. 최근 발표한 각종 감세 정책은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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