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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차에 숨긴 샤넬 백, 직장 상사와의 밀회 대가였다 [탐정의 모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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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해 11월 중순 저녁, 서울 동작구의 한 낡은 빌딩. 백열등이 비추는 복도 끝자락에 간판도, 상호도 없는 사무실이 나온다. 불륜 전문 탐정사무소다. 간통죄 폐지 후 불륜 현장을 급습하던 경찰 업무는 탐정사무소로 넘어갔다. 양지를 지향하지만, 여전히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든다. 사설탐정의 조사는 어떻게 이뤄질까. 간단한 의문을 갖고 취재를 시작했다.

“아내한테 남자가 생긴 것 같다.” 이날 탐정사무소를 찾은 40대 남성 A씨가 입을 열었다. “작년에 직장에서 해고된 뒤 동네 카센터 일을 시작했지만, 자식들 키우기가 벅차 아내에게 부탁해 맞벌이를 시작했다”고 했다. 경기도의 한 요양원으로 일을 나가기 시작한 아내는 한 달쯤 뒤부터 퇴근하면 피곤하다며 방에 들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 회식 때문에 늦는다는 아내를 집 밖에서 기다리는데, 자정 넘어 나타난 아내 어깨에 생전 본 적이 없는 샤넬 가방이 걸려 있었다.

A씨 추궁에 아내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거친 말싸움 끝에 아내는 친정으로 떠났다. 이혼을 각오했다는 그는 한참 얘기 끝에 아내를 미행해 달라고 했다. 그의 약지에는 반지를 끼웠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11월 15일 서울 동작구에서 경기도를 오가는 의뢰인의 배우자를 조사하는 장면. 사진 취재원

11월 15일 서울 동작구에서 경기도를 오가는 의뢰인의 배우자를 조사하는 장면. 사진 취재원

“불륜 조사는 ‘타깃’의 일상 패턴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예정에 없는 장소에 갈 때 증거가 나온다.” 탐정의 말이다. 그는 A씨 아내가 일하는 요양원에 손님으로 가장해 탐문하고, 그녀에 대한 세평을 수집하기도 했다. 타깃은 퇴근 후 도심 빌딩 2층에 있는 한 헬스장에 들러 운동을 마친 뒤 곧바로 친정으로 향했다.

“외도하는 사람은 경계심이 높다지만 이 사건은 패턴이 너무 단조롭다.” 조사에 착수한 지 일주일째, 불륜 정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내가 차에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A씨의 말에 탐정은 문제의 차에서 단서를 찾아보기로 했다. A씨를 통해 타깃의 자동차를 뒤졌다. 차 안에서 비닐에 담긴 속옷과 문제의 샤넬 백이 나왔다. 이 정도면 소송에서 유리한 증거로 쓰이기에 충분하다.

11월 23일 촬영한 경기도의 한 모텔촌. 사진 취재원

11월 23일 촬영한 경기도의 한 모텔촌. 사진 취재원

“증거를 잡았으니 그림자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며 탐정은 헬스장으로 향하는 타깃을 뒤쫓았다. 그런데 타깃이 빌딩 복도의 뒷문으로 빠져나가더니 골목의 한 모텔로 향했다. 탐정은 인근 편의점에서 미리 받아둔 A씨의 카드로 담배를 샀다. “이래야 의뢰인이 법정에서 아내의 불륜 현장을 잡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한 시간 뒤 타깃은 30대 남성과 모텔에서 나왔다. 탐정은 일찍이 그를 본 적이 있다. 요양원 원장이었다.

“A씨가 요양원에서 난동을 부렸다. 원장을 무릎 꿇리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후일 만난 탐정은 사건의 근황을 전했다. “A씨는 폭행 혐의로 입건됐고, 그의 이혼 청구에 아내는 남편이 편집증에 걸렸다며 반소를 냈다. 이혼 사건은 그냥 정글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탐정사무소 매출의 9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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